고개를 돌리면 어디서나 지천

090502 찔레

by 로댄힐

돌아보면 사방에 찔레가 가득하다.


우리 밭둑을 따라 60여 미터, 난초들이 줄지어 서서 청색 기를 흔들며 우리의 발걸음을 맞이한다. 내게는 ‘붓꽃’보다 ‘난초’라는 이름이 여전히 익숙하다. 어린 시절 불러오던 이름들이 장년이 된 지금도 변함없이 입에 맴돈다. 키다리 국화는 물국화, 달리아는 따리아, 원추리는 비새, 붓꽃은 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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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떠 있었으나, 햇볕은 아직 닿지 않았다. 밤나무들이 햇살을 가려 난초들은 이슬을 머금은 채,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고요한 환호 속에 도착했다. 바람이 살짝 스쳐가자 푸른 기가 일렁이며, 그 작은 떨림마저도 우리를 반겨주는 인사처럼 느껴졌다.


서둘러 일 옷으로 갈아입고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지난주에 심어둔 잔디와 들깨, 참깨, 땅콩밭에 물을 대는 일이었다. 언덕 밭에 물을 다 준 뒤, 호스를 바위 밭으로 끌어내리니 호박, 팥, 들깨, 해바라기, 도라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과나무에서 움트는 새싹을 발견했을 때는,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죽은 줄 알았던 사과나무에서 움트는 새싹을 보았을 때,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한 번의 포기와 한 번의 기적 사이, 생명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는 것이었다. 사람의 삶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꺼져버린 듯 보이던 마음 한 구석에서도, 때 아닌 새순은 늘 돋아나는 법이다.


정오를 훌쩍 넘길 때까지 나는 그렇게 물을 주었다.


차밭에서 마지막 찻잎을 따던 두 분 할머니가 편을 통해 내게 칭찬을 전해주셨다. “참 부지런하다.” “꾀도 많다.”라는 말이었다. 호스가 모터도 없이 200m를 흘러 내려와 물을 콸콸 쏟아 내는 걸 보고는, 도대체 무슨 재주냐며 묻기도 했다. 부산에서 여기까지 온 거리와 들인 기름값이 아까워 설쳐대지 않을 수 없고, 알기 전에는 어려워 보였지만, 원리를 알고 나니 모터 없이도 가능한 일이었다. 편은 나보다 더 바쁘게 설쳐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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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뜯어 만든 쑥떡이 맛있다는 소리에, 끝물 쑥을 다시 따러 내려왔다. 뽕잎도 함께 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뽕잎차를 위해서다. 뽕잎으로 쌈을 싸 먹거나 김치를 담가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아직은 시도해 보지 못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운다. 서둘렀다. 뽕잎을 썰어두고 씀바귀 밭으로 내려가야 했다. 범이와 호비의 집을 청소하고 사료를 채워 넣은 뒤, 물을 주다 말고 편을 따라 서둘러 내려갔다.


언덕을 돌아 내려가면 찔레꽃이 온 들을 뒤덮고 있었다. 덤불마다 터져 나온 흰 꽃송이들은 마치 흩뿌려진 별빛 같았다. 밭둑에도, 길섶에도, 심지어 바닷가 버려진 물건 사이에도 찔레는 굳세게 뿌리내려 꽃을 피우고 있었다. 때로는 순박한 웃음처럼, 때로는 묵묵한 기다림처럼.


찔레. 지난해 내가 본 찔레 중 가장 잘 자란 덤불, 가장 큰 덤불, 가장 화사한 꽃송이라 말했던 그 찔레가, 올해는 더욱 눈부시게 꽃을 터뜨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어디서나 찔레가 지천이었다. 밭둑에, 글 속에, 노래 속에, 심지어 바닷가와 방파제 버려진 삶의 흔적 속에도 찔레는 있었다. 때로는 슬픔의 얼굴로, 때로는 기다림의 얼굴로. 길을 잃은 이에게는 불빛처럼 서 있는 등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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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이때를 초여름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찔레꽃 머리’였다. 이 무렵의 가뭄은 ‘찔레꽃가뭄’이었고, 가을의 열매는 까치밥이 되어 ‘까치밥나무’로 불리기도 했다.


지리산의 두 시인에게 찔레는 각기 다른 얼굴이었다. 이원규에게는 “용서의 하얀 꽃,” 박남준에게는 “겨울 산마루로부터 몰려오는 눈 같은 꽃 사태”였다.


“해마다 봄이면 찔레꽃을 피웠으니, 얘야, 불온한 막내야, 혁명은 분노의 가시가 아니라 용서의 하얀 꽃이더라.”(이원규, ‘찔레꽃’ 일부)


“그렇게 겨울이 깊어갔다. 문득 저 산마루로부터 몰려오는 무더기 흰 찔레꽃 같은 꽃 사태 그 앞에 눈길 두고도 발길은 어찌도 그리 무겁기만 하나.”(박남준,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일부)


그렇다면, 이 언덕에서 나에게 찔레는 무엇일까. 찔레꽃이 가득 핀 언덕에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세상은 어쩌면 끝내 용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가시는 분노를 품되, 꽃은 하얀 얼굴로 피어난다. 시인들의 말처럼, 혁명조차도 결국은 화해와 포용의 꽃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산허리를 물들일 즈음, 뽕잎을 따던 손끝에도 바람의 향기가 스며들었다. 하루의 노고가 남아 있었지만, 저무는 빛 속에서 꽃과 나무들이 들려주는 언어에 귀 기울이는 일은 또 다른 위로였다.


마음이 바쁘다. 편은 챙기고 나는 서둘러 분다. 이번엔 소프라노 나팔이다. 작은 거, 그러잖아도 서툰데 마음마저 급하니 입술도 손가락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 이연실의 ‘찔레’도, 장사익의 ‘찔레’도 색소폰으로 불고 싶은 찔레다. 그래도 백연아의 ‘찔레’가 택해진다. 촌스럽지만 그래서 더욱 아련한 찔레다.




부산 집으로 돌아와 뽕잎과 찻잎을 덖고 비벼 널고 나니, 새벽 한 시 반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것은 편의 일이었고, 나는 그저 곁에서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막내를 깨우려면 새벽 다섯 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다. 세 시에 눈이 떠지고, 네 시에 다시 깨어, 결국은 아예 일어나 버렸다.


밤늦도록 덖은 뽕잎을 널어두며, 하루가 길어도 삶은 여전히 모자람 투성이임을 느낀다. 하지만 피곤한 몸을 일으켜 새벽을 맞이하는 일, 그것만으로도 나는 또 다른 내일의 힘을 얻는다. 삶이란 바로 그런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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