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대학 복학, 드디어

090504 지게를 사다

by 로댄힐

길이 젖었다. 5월의 비에 젖은 포장도로는 시야를 한결 편안하게 한다. 가을에 낙엽이 차바퀴에 으깨져 눌려 있던 젖은 길은 마음을 아리게 하지만, 연초록과 진초록이 번지는 이 계절의 젖은 길은 굳은 마음을 풀어 준다. 비 내리는 동안 차 한 대 지나지 않았다. 적막한 길은 나를 상념으로 이끈다. 누렇던 보리밭도 빗물에 젖으니 초록빛을 띤다.


도착해 한참 비가 그치길 기다리다가, 멈출 기미가 없어 결국 큰 우산을 들고 밭으로 내려갔다. 손목으로 전해지는 빗물의 무게는 북소리처럼 묵직했다. 움을 틔우지 못해 포기했던 사과나무 가지에도 물방울이 내려앉아 더욱 함초롬했고, 지난주 심은 들깨와 팥 이랑에도 새순이 올라왔다. 단비였다.


악양천, 물길이자 구름길


아래 악양천은 물길이자 구름길이다. 평소엔 물이 흐르지만, 비 오는 날이면 구름이 거슬러 위로 오른다. 흩어지던 구름이 뭉치더니, 움직이고 달음박질치더니 이내 힘차게 솟아올랐다.


그곳은 학이 모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형제봉 오른편 청학이골에서 흘러내린 물과, 악양천 발원지인 회남재 시루봉 골짜기 물이 합류해 소(沼)가 깊다. 낮은 듯 보이는 언덕 위에서 땅을 기는 구름을 바라보면, 이곳이 결코 낮은 곳만은 아님을 새삼 느낀다.


이튿날도 안개와 비가 이어졌다. 구름 같은 안개는 먼 마을의 불빛마저 삼켜 버렸다. 범이, 호비, 나―셋이서 눈뜨고 지키는 산기슭이다. 밤이 물러가고 아침이 오자, 걷히는 구름 사이로 달이 잠시 얼굴을 내밀었다. 새벽은 아니었으나 5월의 늦은 아침 달이었다.


천장 구름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오를 때, 아래에 깔린 구름은 마치 밟고 걸을 수 있는 방바닥 같다. 내가 머무는 산기슭의 아침 구름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천장 구름’이었다. 신선대, 형제봉, 청학이골을 덮고 있는 가까운 구름은 시야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주었다.


자작나무도 무성히 자랐다. 연한 푸른 잎이 바람의 흉내에도 기다렸다는 듯 흔들렸다. 이틀간의 비가 걷히고 햇살에 반짝이는 자작나무는 잔잔한 은빛 물결 같았다. 마삭줄과 차나무 새순도 눈에 들어왔다. 새 마음을 가져본다.


비가 갠 오후, 들판은 탁 트였다. 농막 길뫼재는 어느새 녹음에 잠겼다.


드디어 지게


마침내 지게를 샀다. 필요성을 느낀 지 오래였지만, 나무 지게는 비쌀 뿐 아니라, 구하기도 어려웠다. 하동 장에서도, 고성이나 구례 장에서도 마땅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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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점에 있던 철 지게는 뼈대뿐이라 완성하려면 멜빵이며 등받이며 손이 많이 갔다. 마음에 썩 내키지도 않았다. 누군가 집에 버려둔 지게가 있지 않을까 수소문했으나 헛수고였다.


하는 수 없이 2년 동안은 등에 멜 수 있는 ‘모래 짐통’을 대신 사용했다. 값은 8,500원. 허술한 멜빵은 불안했지만, 나무를 지는 데는 그럭저럭 견뎠다.


그러던 중 온라인 매장에서 알아보던 알루미늄 제품을, 우연히 철물점에서 발견해 곧장 구입했다. 드디어 꼭 필요했던 지게를 손에 넣은 것이다.


처음엔 가족이 반대했다. 교수 신분에 지게라니, 중노동에 다칠까 염려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구해 놓으니 필요성을 인정해 주었다. 풀과 돌멩이, 퇴비, 그리고 바위밭 수확물을 옮기는 데 지게만 한 것이 없었다.


물론 준비는 끝난 게 아니다. 지게 작대기와 ‘옹고발’이 있어야 한다. 지역에선 ‘옹고바리’라 부르기도 하지만 표준말은 ‘발채’라 한다. 나는 그동안 이를 ‘바지게’라 잘못 알았다. 사실 바지게는 발채를 얹은 지게를 뜻한다. 발채는 구례 장에서 구할 생각이고, 작대기는 직접 다듬거나 이장 댁에서 얻어볼 참이다.


지게 대학 복학


이제 나는 ‘지게 대학 복학생’이 되었다. 사실 지게 지는 법은 이미 익숙하다. 초·중학교 시절, 어머니 따라 장에 갈 때나 동네 아이들과 나무하러 다닐 때, 늘 지게를 졌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금을 마련하지 못해 본격적으로 지게에 매달렸으니, 그때 이미 ‘지게 대학’에 입학했던 셈이다.


어른들은 지게를 진 아이들을 ‘지게 대학생’이라 불렀다. ‘바위고개’는 지게 대학의 교가 같았다. 그 시절 나는 동시에 ‘똥장군 대학’의 학생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중퇴하고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090504-2.gif 부산 중구 동광동 40계단 거리 조형물

어떤 분의 수필을 인용해 본다. ‘지게 대학’이라는 말 사용 사례이다:


“가정 조사서를 쓰면서 엄마한테 엄마, ‘엄마는 무슨 학교 졸업했어?’ 그렇게 물으면 아버지와 엄마는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아주 당당하게 ‘니는 아직 그것도 몰랐나? 아버지는 지게 대학 나오고, 엄마는 부지깽이 대학 안 나왔나. 그것도 몰랐나?’ ‘아~!’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아버지가 그렇다고 했으니까 맞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도 막상 학교에서 두 분 다 대학을 나왔다고 하려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우리더러 다 눈 감으라 하고는 해당 사항에 손을 들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대학 나온 사람에 손들고 엄마는 고등학교 나온 사람에 손을 들었다.

시골 학교에 대학 나온 아버지도 대학 나온 엄마도 참 많았다. 선생님께서야 늘 상 있었던 일이니 잘 알겠다는 표정이었던 것 같았다.” (이청준의 ‘학력’ 일부)


또 다른 분의 칼럼을 인용해 본다. 당시 지게를 진 인생들의 장인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말인데, 이에 대해 나 또한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는 지게 대학을 중퇴했다. 그렇게 무시한 지게에 대하여 대학의 기준을 세우고 싶다. 지난날 상머슴들의 풀 베는 모습과 나무하는 모습은 그 기능이 놀라울 정도이다. 빠르게, 나뭇짐은 볼품 있게, 주인 밥이 미안하지 않게, 자연을 지키며 완벽한 머슴살이를 하는 머슴살이야말로 요즘 정치인들이 새겨보아야 할 일이다.

그들의 낫질과 지게의 익숙한 등짐은 나는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지금 나는 그들을 지게 대학의 교수라고 부르고 있다. 지게 대학 교수님들은 흙을 알며, 분수를 알며, 성실과 근면은 기본이 되어 있었다. 아주 소중한 우리가 잃어버린 땅의 교수님들이 아닐 수 없다.” (문병우 시인의 ‘그립다, 환경 마을’이라는 제목의 칼럼 일부. 문 시인은 마천에서 우체국 집배원을 하면서 선시를 쓰다가 이번에 경남신문에 시가 당선. 정년퇴직하여 진주에 안거 중.)


지게대학 교수 자리


지금 나는 긴 세월을 지나 지금 이렇게 지게 대학의 적을 회복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나는 지게 대학 복학생이다. 전공과는 생각해 보지 않기로 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지게 대학 골병과’에 다닌다"라고 말하기도 하던데 난 골병을 전공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골병과는 아니다.


하지만 똥장군 대학의 적은 회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복학한 지게 대학을 언제 졸업하게 될지 그것도 모르겠다. 다만, 결석하지 않고 열심히 다녀, 지게 대학원을 거쳐 교수 자리도 한번 노려봐야겠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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