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련과 애련

090601

by 로댄힐

상련


밤나무 그루터기, 한번 앉아보리라 하면서도, 아직 앉아본 적은 없다. 그 나무는 아낌없이 주고 간 나무였다. 워낙 고목이었기에 언젠가는 베어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고, 이미 반쯤은 죽어 있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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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대장 같던 밤나무, 있을 때도 그 자리가 크더니, 사라진 뒤에도 빈자리는 작지 않았다. 없어진 후에도 한동안은 여전히 그곳에 있는 듯 보였다. 사라진 물체의 형상이 오래도록 내 뇌리에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그 모습마저 서서히 희미해져 간다.


“있어야 있는 것일까? 없어도 있는 것일까?” 없어진 나무를 보며 나는 배운다. 해야만 하는 것일까(有爲)?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임(無爲)을, 그 나무는 내게 일깨워 준다.


밤송이, 한둘이더니 이내 여럿이 모였다. 서너 개, 대여섯 개로 불어나는 모습을 지난 늦가을마다 내려갈 때마다 보았다. 차밭 주인 할머니 손에 하나둘 옮겨진 것들이지만, 내 눈에는 마치 밤송이들이 스스로 발을 옮겨 엉금엉금 모여든 듯 보였다.


이것은 상련(相戀)이다. 내 눈엔 그랬다. 밤송이들이 나무와 서로 벗 되어 속삭이는 듯 보였으므로.


애련


새벽. 밖의 두 녀석은 안에 있는 나의 기척을 곤두세워 살핀다. 미세한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범이와 호비가 동시에 날뛴다. 주인인 내가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싶다가도, 사람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저럴까 싶다. 그래서 눈이 뜨이는 대로 두 녀석의 이름을 부르고, “이 넘들, 잘 잤나?” 하고 말 건네며 밖으로 나간다.


물론 이들은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사방을 향한 경계심이 살아 있고, 안의 내 기척에도 신경이 곤두서 있었으니. 아무튼 나는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정을 아낌없이 주려 한다. 내겐 자주 오는 발걸음일지라도, 녀석들에겐 짧은 만남이니까.


그런데 이번 새벽은 조금 달랐다. 보통은 범이의 움직임 소리가 먼저 들리는데, 이날은 호비가 벽을 긁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속으로 “저 넘이 무척 그리웠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것도 기특하게. 처음과 달리 요즘은 범이가 점점 촐랑대고, 호비는 차분해졌다.


호비는 긁고 나서 짖었다. “어서 나오시라”라는 문안 인사 같아 밖으로 나가 차례차례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곤 맑은 새벽 공기를 더 마실 겸 가슴을 펴고 몇 걸음 걸었다. 밭을 한 바퀴 빙 돌았다.


그런데 호비가 계속 짖었다. 예전엔 내가 움직이면 함께 가자며 짖곤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사춘기라도 하나? 바람이라도 났나?” 하며 못가로 향했다. 물이 많이 빠져 있었다. 못 둑에 틈이 생겨 물이 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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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번쩍 깨달았다. 물, 물 때문이었다. 물 한 통을 떠다 주자 호비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평소보다 다섯 배는 더 마시는 듯했다. 범이는 도랑 가까이 묶여 있어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지만, 호비는 줄 끝이 도랑에 닿지 않아 늘 내가 챙겨주어야 했다. 겨울엔 꼭 물을 따로 떠다 주었는데, 여름이라 도랑에도 물이 차 있다고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서, 반가워서 저리 짖는 줄로만 알았다. 세상에! 갈증 때문에 그토록 간절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말 못 하는 짐승’이라는 말이 이렇게 절실하다니. 주인은 눈치조차 채지 못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물을 다 마시더니, 호비는 그늘에 누웠다.


호비를 보면 늘 마음이 애련해진다. 주인 잘 만났다면 흙에 뒹굴지 않고 실내에서 대접받으며 살았을 텐데, 그래도 흙투성이 몰골로 뛰어와 반겨주고, 덩치 큰 녀석이 꼬리뿐 아니라 엉덩이까지 흔들며 달려드는 걸 보면 애잔함이 밀려온다. 애련하다.




들판의 논마다 물이 차자 빛깔이 변했다. 연두색이다. 언덕에 서면 내가 연둣빛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봄이 온 듯했으나 곧 가버렸다. 이제는 여름, 하지만 초저녁과 새벽의 기미는 벌써 가을을 부른다. 귀뚜라미인 줄 알았던 소리가 여치였으나, 어쨌든 풀벌레 울음은 여름이 떠날 채비임을 알려준다.


범이의 여름 자리는 앵두나무 그늘이다. 올해는 앵두가 많이 열려 제법 따 먹었다. 평생 한 번에 그렇게 많이 먹어 본 건 처음이다. 아마 내년엔 더 많이 맛보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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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 그늘에 앉은 범이를 보노라면 역시 마음이 애련하다. 요즘은 밀쳐도, 쥐어박아도, 뒷발로 걷어차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애착이 짙어진 것이다.


부산 집에 있을 때는 될 수 있으면 그들을 잊으려 한다. 자꾸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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