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한 이름 예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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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앞 밭의 활기


앞 밭의 주인이 바뀌었다. 새 주인은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부부다. 산, 특히 지리산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2~3주 전 처음 밭을 보러 왔을 때, 내 블로그를 통해 악양 동매마을 풍경의 아름다움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다. 직접 와서 보더니 “교수님 글에서 묘사한 그대로, 정말 좋습니다”라며 감탄했다. 목요일 새벽에 도착해 인근에서 야영 중이라고도 했다.


앞 밭이 활기를 띠고 있다. 그날 우리는 우리 밭에서 들깨와 참깨 모종을 옮겨 심었고, 그들은 자기 밭에서 웅덩이를 파고 있었다. 조금씩 비가 내렸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비를 맞으며 묵묵히 일을 이어갔다.


풀 벼룩 공습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풀벌레 공습, 올해도 피하기 어려운가 보다. 벌써 손등과 얼굴, 두 곳이 1차 공격을 당했다.


첫 번째는 손등이었다. 앞밭 새 주인인 서울 부부와 늦은 아침을 함께하려고 우리 농막 데크에 앉아 있을 때였다. 왼손등이 따끔해 살펴보니, 어느새 벌레에 물린 흔적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내 가렵더니 부풀어 올랐다. 자고 일어나니 아예 퉁퉁 부어 있었다.


두 번째는 바랭이 이랑에서였다. 뽑고 또 뽑아도 끝도 없이 자라는 게 잡풀, 그중 으뜸은 단연 바랭이다. 들깨·참깨 옮겨 심을 자리에 부직포를 덮어두었지만, 별 효과는 없다. 다만, 덮지 않은 자리보다 덜 무성한 정도일 뿐.


그 밭을 매던 중, 혹시나 하여 조심조심 풀을 뽑는데도 놈 하나가 날쌔게 얼굴을 공격했다. 오른편 뺨이 따끔하더니 가렵고, 이내 부풀어 올랐다. 아침에 거울을 보니 얼굴에 작은 동산 하나가 솟았다. 제주도의 오름이나 경주의 왕릉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내 얼굴 면적에 비하면 결코 작지 않은 봉우리다. 딴 얼굴이 된 셈이다.


재작년엔 편이 공습을 받아 급히 보건소로 달려가 응급처치를 받은 적이 있다. 그 후로 편은 신기하게도 피해를 잘 피하고 있는데, 나는 작년, 올해 연달아 표적이 되고 있다. 이번 두 방은 예고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 올해 공습은 이걸로 끝날 듯하다. 장마철 전후가 바랭이와 그 속 벌레들의 번식과 활동이 절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작 이 톡 쏘는 놈들의 이름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바랭이 속에서 튀어 오르는 모습은 벼룩 같아 ‘풀 벼룩’인가 싶다가도, 날쌔게 날아다니며 공격하는 걸 보면 다른 이름이 있는 듯하다. 물론 내가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농사일을 하며 산기슭 밭에 머물다 보면, 풀과 벌레 이름조차 모르는 게 너무 많음을 깨닫는다. ‘알아야 면장 한다’라고 했는데, 내겐 여전히 모르는 세계가 수두룩하다.


예취기 검토


예취기 구입 문제를 두고 신중을 거듭했다.


첫해 여름, 그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낫으로 풀을 다스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막상 여름이 닥치자 낫질이 점점 힘에 부쳤다. 장마철에는 무성한 풀들에 밀리고 부대끼기를 거듭하다가, 결국 낫으로는 불가항력임을 인정하며 첫해 여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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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에는 예취기를 본격적으로 검토했다. 그러나 결론은 ‘버틸 데까지는 낫으로 버티자’였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서는 기계 구입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름부터 따져보았다. ‘예취기’라는 말은 생소했다. 찾아보니 풀을 베는 기계를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제초기’가 더 맞지 않을까 했지만, 그것은 ‘잡초를 뽑아 없애는 기계’를 뜻한다고 했다. 뽑는 것과 베는 것은 다르니, ‘예취기’라는 이름이 옳았다. 그러나 둘 다 내겐 낯선 말이었다. 당시 떠올린 것은 휘발유 동력 예취기였는데, 주위에서 위험하다며 하나같이 만류했다.


지난해에는 부탄가스를 사용하는 ‘가스 예취기’를 알아보았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제품이라 흥미로웠다. “그래, 바로 이거다” 싶었지만, 이번에는 편이 반대했다. 나 역시 선뜻 결심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낫질에도 이력이 붙어, “올해도 낫으로 넘기자”라는 결심이 오히려 굳어졌다. 그렇게 낫질을 부지런히 했지만, 풀의 키를 잠시 낮출 뿐, 왕성한 번식력과 성장력을 꺾지는 못했다. “낫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 채로 겨울을 넘겼다.


그리고 지금, 6월 중순, 풀들이 뿌리 깊이 발동기를 세차게 돌리는 계절이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부지런히 낫질과 괭이질을 했지만, 풀들은 가속이 붙은 듯 쑥쑥 자라며 땅을 장악해 간다. 내 낫질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충전식 예취기


마침내 예취기를 사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처음에는 동력 예취기를 제쳐두고 가스 예취기를 검토했는데, 문득 안중에 없던 충전식 예취기가 떠올랐다. 두 기종을 비교해 보니, 내게는 충전식의 장점이 단점을 압도했다. 게다가 최근 출시된 제품은 성능이 크게 개선되었고, 가격도 다른 예취기에 비해 훨씬 저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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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취기 구입을 미루어온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용 시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돌멩이들을 먼저 치워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 밭의 돌을 부지런히 골라낸 것도 결국 이날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결국 선택한 제품은 ‘애니컷 2009년형’이다. 예취기, 이름도 생소하고 생김새도 낯설지만, 자주 사용해 이름과 동작 모두에 익숙해지는 것이 올여름의 과제다.


예취기는 등에 메거나 어깨에 건 채 날을 고속 회전시켜 작업하는 구조라 위험성이 따른다. 그래서 일체형 2도 날보다는, 비록 작업 효율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나일론 날, 관절형 날, 3도 날, 원형 날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한다. 또한 안면보호구·보호안경·무릎보호대 착용, 긴소매 셔츠와 긴 바지, 장갑, 안전화 착용이 기본 안전 수칙이다.


작업능률 면에서는 충전식이 가장 떨어진다. 하지만 나는 휘발유나 가스 예취기에 비해 공해가 덜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점을 높이 샀다. 원형 날과 나일론 날을 주로 선택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또 밭에 전기가 있어 충전이 바로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가격 역시 선택을 뒷받침했다.


실제로 작업할 때는 긴소매 셔츠와 긴 바지, 장갑, 작업화, 안전모를 착용했다. 다만 안면보호구·보호안경·무릎보호대는 아직 준비하지 않았다. 나일론 날을 주로 사용할 예정이라, 꼭 완전무장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조작법 숙지


원형 날과 나일론 날을 각각 분리하고 장착하는 법을 익히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설명서는 약간의 도움이 되었을 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니 날의 톱니를 왼쪽으로 향하게 해야 하고, 나사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조여진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번번이 반대로 했다. “관념과 경험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풀이 잘 베어졌는데, 탈착을 다시 한 뒤에는 기계가 심하게 떨리며 잘 깎이지 않았다. 살펴보니 원형 날을 거꾸로 장착해 놓은 탓이었다. 또 한 번은, 나일론 줄을 장착할 때 필요한 얇은 나사를 제거하지 않은 채 원형 날을 덧대어 떨림이 생겼다. 이런 시행착오 끝에야 비로소 스위치 조작법까지 익혔다.


이동 중에도 무심코 스위치를 서너 번 눌렀다. 물론 곁에 아무도 없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만에 하나의 사고를 생각하니 앞으로는 이동할 때 반드시 안전 잠금장치를 걸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위험한 기계를 다루는 일이니, 단순히 조작법을 익히는 것을 넘어 몸에 배게 해야 한다. ‘안전운전’ 그 이상으로 말이다.


충전 한 번으로 한 시간 이상 거뜬히 작업할 수 있었다. 다만 완전충전에는 최소 10시간이 걸렸다. 예취기를 세 번 돌려, 밭 전체의 풀을 한 번 베어냈고, 그 뒤로는 나일론 날만 사용하기로 했다.


아직 숙련되지 않은 초보 이발사의 손길처럼 예취 자국이 고르지 못했지만, 내 눈에는 제법 단정히 깎인 잔디밭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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