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물든 풀의 때

090501 잔디를 심고서

by 로댄힐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잔디를 샀다. 조선 잔디로 할까, 서양 잔디로 할까. 씨앗으로 할까, 뗏장으로 할까. 금잔디, 들잔디 중 무엇을 택할까. 심을까 말까 망설이고, 파는 곳을 알아보고, 김해에서 살지, 진주를 지나 하동 완사역 옆 잔디 상회에서 살지 따져보는 데 걸린 시간이 꼬박 1년이었다.


잔디 하나 사는 일에 그토록 심사숙고했다는 말이 아니다. 우유부단함이 빚어낸 지체였다.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야 하는데, 할 듯하다가 아니하고, 아니할 듯하다가 하고 마는 나의 습성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휘된 것이다.


결국 조선 잔디와 들잔디를 뗏장으로 사기로 하고 김해로 향했다. 김해 시청 앞, 꽃집들이 늘어선 길목에서 세 평 분량의 잔디와 씨앗 두 봉지를 샀다. 트렁크에 실으니 꽉 찬다. 발을 저는 종업원 아저씨가 주인 몰래 잔디 세 묶음을 더 얹어주었다. 여사장 주인의 인심도 넉넉해 보였는데, 종업원의 인심 또한 못지않았다.


곡괭이를 들이대야 심을 자리가 잡힌다. 비옷을 입고 땅을 팠다. 더위에 못 이겨 옷을 벗어던지니, 비와 땀이 뒤섞여 금세 안팎으로 흠뻑 젖는다. 첫날 다 심을 줄 알았는데,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뗏장을 잘게 쪼개다 보니 예상보다 넓은 면적을 차지했다.


편에게 전화했다. “잘 자라”라고, “잘 자겠다”라고 서로 말했다. 마침 “잘 자오. 잘 자오. 새벽종 울릴 때까지”하는 ‘밤하늘의 트럼펫’을 불고 난 후였다. 저 아래 먼 논의 개구리 소리, 먼 산의 소쩍새 소리와 구름 또 밤안개는 내 머무는 길뫼재를 더욱 적요로 감쌌다.




이튿날도 잔디 심는 일에 매달렸다. 앞으로 넓게 펼쳐질 잔디밭을 그려보며, 그 위에서 치를 가든파티를 상상했다. 색소폰을 세워두고 연주하는 풍경, 앰프와 마이크를 준비하는 일, 밤하늘의 별을 보기 위해 망원경을 들이는 일, 나아가 작은 집을 지어 옥상에는 천체망원경을, 아래에는 음악실을 꾸미는 상상까지 이어졌다. 과했지만, 그 공상들이 나를 거들어 준 셈이다. 결국 잔디는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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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다. 땀, 많이 흘렸다. 쓸 데가 있을 것 같아 사둔 1인용 그늘막을 테라스에 펴, 세웠다. 테라스 구석의 큰 독에 담긴 물은 데운 듯 따뜻하다. 샤워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목욕을 했다. 상쾌하다. 저기 저 앞 저 먼 섬진강, 저기 저 옆, 먼 형제봉!


해가 형제봉에 걸린다. 신선대 절묘한 바위가 실루엣으로 더욱 눈부시다. 문득 울컥 그리움, “밀려오는 그리움!” 바로 아래 매실 밭은 온통 민들레 노란색이다.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그 누구 곁으로 날아갈” 차비인지, 해지는 이 시각에 꽃잎을 다 접었다.


이때면 매번 하게 되는 생각은 이거, “산등성이의 해 질 녘은 너무나 아름답다고”하는 거. 테라스에 혼자 앉아 보는 일몰이 아깝다고 했다. 편은 내일 내려오기로 했다. 하동 시외버스 터미널로 마중 나갈 일 생겼다. 물론 사전에 해 둔 약속 이행이다.




3일째, 아래 차밭, 오늘도 할머니 혼자서 찻잎을 딴다. 내려갈 때 인사했더니, 어김없이 “혼자 오셨어요? 아지매는요?” 하고 응답한다. 지금 오고 있어서 터미널에 마중을 나간다고 하니 변함없이 쩌렁쩌렁 “좋겠다!”이다. 색시가 오니 누구는 좋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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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좋음도 잠시, 도착하자마자 옷을 걷어붙이고 지도 내도 밭으로 내려선다. 찻잎 따고, 도라지밭 김매고, 떡 할 쑥 캐고 팥 심었다. 들깨와 참깨씨도 흙 속에 넣었다.


저녁, 다시 해가 진다. 어제와 똑같은 시각, 어제와 똑같은 풍경. 함께 앉아서, 해가 지는 산등성이를 보자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럴 겨를이 없었다. 부산으로 돌아가기 전, 챙겨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손?, 요즘 내 손에는 풀의 때가 늘 묻어 있다. 물로 씻겨도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그렇게 손에 때가 묻는 동안, 해는 어김없이 서산으로 기울고, 지는 해의 궤적은 계절 따라 조금씩 북쪽으로 옮겨간다. 겨울에서 멀어질수록, 봄과 여름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잔디를 심는 일은 결국 땅과 나 사이의 대화였다. 삽질 하나하나는 내 우유부단한 성격을 조금씩 다잡는 훈련 같았다. 씨앗을 뿌리듯 결심을 뿌리고, 뗏장을 붙이듯 삶의 자리를 다져가는 과정이었다. 흙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이는 순간, 나는 내가 선택한 자리에 뿌리내리는 또 하나의 생명처럼 느껴졌다.


손에 묻은 풀의 때는 단순한 얼룩이 아니었다. 연구실의 하얀 분필가루 대신, 이제는 흙과 풀잎의 흔적이 내 손에 남는다. 지워지지 않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 흔적은 도시에서 지워버린 감각을 되살려 주었고, 자연과 더 가까워졌다는 증표가 되었다.


형제봉 너머로 지는 해를 보며, 문득 계절의 궤적과 내 삶의 궤적이 겹쳐졌다. 해가 조금씩 북쪽으로 기울듯, 나의 하루하루도 어딘가를 향해 조금씩 옮겨 가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일지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오늘의 흙냄새와 오늘의 노을을 충분히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잔디를 심으며 얻은 깨달음은 결국, 삶 또한 그렇게 한 뼘 한 뼘 붙여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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