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801
해가 형제봉에 걸려 넘어져야 더위가 꺾인다. 점심 먹고 쉰 후, 밭에 늦게 들어가느라고 들어선 시간이 오후 4시 반경이었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니 이 시각쯤이면 견딜 만하지 않겠는가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편과 아이들이 걱정하는 건 내가 미련스럽게 일하는 건데, 그것을 피하려고 제법 애쓰는 나의 요즈음인지라 일손을 놓고서 원두막 그늘로 몸을 피신시켰다.
오후 6시, 형제봉에 걸리더니 해가 넘어진다. 이때다. 1여 년 동안 삭힌 깻묵 거름통을 열고는 통에 퍼담아 날랐다. 손이나 옷에 거름이 묻을까 봐 조심조심하였다. 어두워서 부근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밭일을 계속할 수 없는 일, 그래서 하던 일을 멈추고 옷자락을 살피니 다행히 묻지 않았다. 홀딱 벗고 씻을 때 손의 냄새를 확인했더니 다행히 냄새가 아주 덜 난다. 이번엔 손톱달이 형제봉에 걸린다. 해는 걸려 넘어졌는데 달은 걸려도 넘어지지 않았다.
나와 앉았다. 편과 함께 왔으면 우리 ‘둘의 자리’이지만 혼자 내려올 때가 더 많으니 대부분 ‘나 홀로 자리’이다. 소리가 나는데 새소리는 아니다. 왕성한 풀벌레 소리에 묻혀버린 것일까. 여름 이때는 산새가 울음을 멈추는 것일까? 밤의 산기슭 소리는 이제 여름의 소리가 아니다.
혼자 앉아 있으니 차 소리 또 먼 마을 소리가 조용히 그러나 잘 들린다. 차 소리, 도심의 우리 집에서는 소음이지만 이곳 한적한 밤의 이 자리에서는 아련한 소리이다.
사람 소리도 들린다. 가까운 소리다. 도란도란 이어진다. 바로 앞 밭 텐트의 서울 부부가 다정히 나누는 ‘밤의 소리’이다. 그늘지어줄 나무 한 그루 없는 한더위, 밭에서 저리 쉬지 않고 일해도 되겠는가 하는 걱정을 내게 안겨준 젊은 내외의 대화는 그야말로 ‘도란도란’이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8월 이때면 늘 뜨는 것일까? 초저녁 동쪽의 별 하나가 유난히, 온화하게 밝다. 지난주에도 그랬는데 오늘 밤도 동쪽을 밝힌다. 밤을 새워 지켜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 별이 언제 빛을 거두어 드리는지는 모르지만, 일어나 돌아서서 문 열고 들어가, 문 닫고는 불 끄고 자야 하기에 밤을 새울 수 없다.
초저녁 별빛, 초롱초롱해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겠다.
해뜨기 전에 왕창 해치워야 한다. 빨리 쌀 씻어, 밥 지어서는 후딱 비벼 먹어 치웠다. 깻묵 거름, 바삐 퍼 나르면서 와장창 파 뒤집어엎었다. 가을 김장 채소를 심을 자리 마련했다는 의미이다. 다음 주에 편이랑 둘이 내려가 파종할 참이다. 해뜨기 전에 파버릴 거라고 너무 설쳤나? 힘이 다 빠진다. 땀? 한 되는 흘렸다. 한여름에 흘리는 땀의 양, 두 되 분은 아니다.
다시 밤이 왔다. 부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정을 생각하여 늦게 출발할 참이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별, 그 별이 또 떴다. 빛을 발한다. “초저녁 별빛”이다. “초저녁 별빛은 초롱 해도 이 밤만 다 가면 질 터”인 그 별이다. 앞 밭의 내외는 낮일 마치고 하동 읍내로 저녁 먹으러 나갔다. 사위가 고요하다. 범이도 입을 다물었다. 호비는 아까부터 조용했고, 보고 앉았다가 일어섰다.
돌아와 찾아보니 ‘초저녁 동쪽 별’은 ‘목성’이었다. 자신은 없다. 목성인 것 같았다. “초저녁 별빛이 초롱해도 이 밤이 다 가면 질 터인” 그 별인지, “초롱한 저 별이 지기 전에 구름 속에 달님도 나오실” 그 별인지 그건 확인하지 못했다. 빛이 점점 깊어지는 들판이 생각난다. 풀 속에 피어 있는 부추꽃도 생각난다.(인용은 정태춘 박은옥의 봉숭아 일부)
원두막, 우리가 없을 때는 일륜 카 자리이다. 일륜 카, 이번에 빛을 발했다. 소똥 거름 옮길 때 톡톡히 제 한몫을 다 한 것이다. 평소 원두막 옆에 세워 두었었는데 비도 맞고 햇볕도 온통 쬘 수밖에 없었다.
창고 안에 넣어 두기도 했는데 비좁아 곧 끄집어내고 말았다. 원두막 아래에 넣어 두기도 했는데 불편했고 또 호비가 밖으로 나오면 그 자리가 호비 자리인지라 옮겨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 원두막 바로 뒤의 둑 아래 도랑을 치는 편을 위해 일륜 카를 옮길 때 퍼뜩 떠오른 생각이, “원두막 위에 올려두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륜 카를 원두막 위에 올렸다. 올려놓고 나서,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