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09
바람개비들이 줄지어 서서 섬진강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황금 들판 축제라 부르기도 했던 허수아비 축제와 토지문학제가 같은 날 열리고 있는 악양 초입 평사리의 무너미 들판. 차를 구석에 세워두고 가로질러 끝까지 걸어보고 싶었지만, 잠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고요 속에서 바람개비들이 묵묵히 제자리를 돌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추억의 문이 살짝 열리는 듯했다.
색종이로 바람개비를 만들어본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초등학교 때 그런 공작 시간이 있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다만 집에서 헌 공책을 찢어 만들어보긴 했던 것 같다. 수수깡 대신 버드나무 가지를 깎아 꽂았던 기억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버드나무의 결은 수수깡보다 거칠지만, 아이 손에는 부드럽게 느껴졌던 듯하다.
그때의 색종이는 투박한 오색이었지만, 지금의 코팅된 바람개비보다 훨씬 더 눈부시게 느껴졌다. 먼지 쌓인 점방 진열대 위 유리그릇 속 박하사탕처럼, 조금은 알싸하고 조금은 동경스러웠다. 내겐 잘 나오는 컬러텔레비전 화면보다도 더 선명했다. ‘색종이’라는 말 자체가 꿈과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그 시절엔 단 한 장의 색종이로도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팔랑개비는 또 무엇일까? 찾아보니, 바람개비가 바람의 힘으로 돌아가는 반면, 팔랑개비는 스스로 떨어지며 회전하는 물건이었다. 바람에 맞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몸을 맡겨 흩날리며 도는 존재였다. 그 차이가 묘하게 인생의 두 방향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바람을 이겨내며 나아가고, 누군가는 바람에 몸을 맡겨 흘러간다. 결국 두 존재 모두 바람 속에서만 의미를 얻는다.
팔랑개비를 직접 만들어본 적은 없다. 어쩌면 그 시절엔 바람을 잡는 일보다 바람을 바라보는 일이 더 중요했는지도 모른다. 점방에서 사서 날려본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추석이나 설에 세뱃돈을 받아본 기억도 희미하다. 대신 이제는 내가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건네는 입장이 되었다. 그들이 훗날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어쩌면 그들의 마음속에도,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바람개비처럼, 시간이 불어올 때마다 돌고 또 도는 아련한 추억 하나쯤은 남아 있겠지.
유년의 바람개비는 꿈꾸던 시간의 색깔이었다. 손끝에서 바람을 받아 돌던 그 작은 날개는, 세상의 모든 빛과 바람이 내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순수한 믿음의 상징이었다. 바람개비는 바람이 불어야만 돌아갔지만, 어린 마음은 바람이 없어도 손으로 부치며 세상을 돌릴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바람개비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상상하게 하는 시간의 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바람개비는 다르다. 인생의 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그저 묵묵히 돌아간다. 어린 시절의 바람이 설렘과 놀이였다면, 이제의 바람은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다. 인생의 바람은 때로 차갑고, 때로 거세며, 때로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지나간다. 그러나 바람개비는 그 모든 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바람이 있기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멈춘 듯 보여도, 삶은 여전히 바람을 기다리며 조용히 돈다. 겉으로는 정지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여전히 바람을 향한 기다림의 회전이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인생의 또 다른 형태의 움직임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눈에 띄지 않는 시간의 바람 속에서도, 마음은 여전히 돌고 있다. 잃어버린 꿈을 다시 맞이하려는 작은 바람개비처럼, 인간은 멈춘 자리에서도 회전하며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간다.
결국 바람개비는 말한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기다리는 것 또한 바람을 맞이하는 일이다.”
그 조용한 철학이야말로, 바람처럼 살다 가는 우리 인생의 가장 단단한 진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