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10
들깨를 쪘다. 잎의 상태가 좋지 않아 올해 농사는 망한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들깨를 털어보니 알알이 실한 결실이 맺혀 있었다. 가을은 어김없이 제 몫을 다했다.
여름의 걱정을, 가을이 한 번에 날려버린 것이다. 들깨밭에서 올라오는 풋풋한 냄새가 그 사실을 증명하듯 코끝에 와닿는다.
들깨의 향은 참 묘하다. 파릇한 여름의 풀냄새 속에서도 고소함을 품고 있고, 겨울에 타들어갈 때는 또 다른 깊이로 변한다. 흙과 햇살, 바람과 땀의 향이 모두 그 속에 스며 있다.
생각해 보면, 여름엔 언제나 걱정이 많다. 너무 비가 많이 와서 작물이 상할까, 너무 더워서 사람도 지쳐버릴까. 그러나 정작 가을이 되면 그 걱정들은 십중팔구 기우가 된다.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도 콩이 열리고, 더위에 지친 논두렁에서도 벼는 고개를 숙인다.
인생도 그렇다. 걱정의 계절이 지나야 결실의 계절이 온다. 걱정은 실패의 전조가 아니라, 다가올 열매를 위한 기다림의 과정일 뿐이다.
유흥준의 시 「들깻잎을 묶으며」를 다시 읽는다.
“말 안 해도 뻔한 너희네 생활, 저금통 같은 항아리에 이 깻잎을 담가
겨울이 오면 아우야 흰쌀밥 위에 시퍼런 지폐를 얹어 먹자, 우리.”
짧은 구절 속에 서민의 삶이, 그리고 그 삶의 작지만, 단단한 희망이 들어 있다. 깻잎을 묶는 행위는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저축, 가난 속의 기쁨, 삶을 견디는 의식이다. ‘시퍼런 지폐’는 돈의 상징이면서도 동시에 ‘노동의 땀’과 ‘자존의 빛깔’을 함께 품고 있다.
이 시는 우리에게 말한다. 오늘의 들깻잎 한 장이 내일의 밥상 위에 놓일 희망이 된다고. 그 믿음이 있기에, 사람은 오늘도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며, 내년의 들깨밭을 그린다고.
내년에는 들깨 심을 면적을 더 늘릴 참이다. 땡초와 가지가, 따고 또 따도 계속 달린다.
세철(三季)을 함께한 이 작물들은 나를 그 곁에 서게 만든다. 봄의 씨앗, 여름의 걱정, 가을의 결실 - 이 순환의 흐름 속에 인생이 있다. 겨울이 오기 전, 들깨의 향은 고소하게 농익어간다. 그 향은 마치 인생의 한 장면 같다.
고생 끝에 남는 것은 향기요, 걱정 끝에 남는 것은 감사다. 가을은 결국 여름의 걱정을, 시간의 손끝으로 다정히 털어내주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