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실 검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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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중기 마을 먼 산허리에 하얗게 떠 있는 집 한 채가 있다. ‘풍악재’라 이름 붙인다는 그 집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사 중이었는데, 오늘 토요일에 마침내 문을 연다고 한다. 아이들의 놀이와 문화공간으로 쓰일 소박한 건물이라지만, 집을 짓기 위해 뜻을 모은 이들의 기대가 그 안에 스며 있는 듯하다.


둥글게 포장된 큰 덩치의 하얀 짚 동들이 그 집을 향해 줄지어 엎드려 있다. 멀리서 보고 있자니 꼭 이슬람교도들이 예배드리기 위해 몸을 굽힌 모습 같다. 그 똑같이 낮게 엎드린 형상 속에서 묘한 평등의 기운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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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도들은 하루에 다섯 번, 해의 움직임에 맞춰 예배를 드린다 한다. 새벽(파즈르), 정오(주흐르), 오후(아스르), 일몰(마그립), 그리고 밤(이샤). 그중 밤 예배는 세상이 어두워져 흰 실과 검은 실을 구분할 수 없을 때 드린다고 한다.


‘흰 실과 검은 실’이라는 표현이 참 인상 깊다. 예배는 깨끗한 곳이라면 어디서든 드릴 수 있다고 한다. 길 위에서도, 상점에서도, 산이나 들, 학교에서도 가능하단다.


예배 인도자를 ‘이맘’이라 부르는데, 보통 무리 중에서 나이가 많거나 학식이 깊은 사람이 맡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맘은 단순히 예배를 인도하는 역할일 뿐, 목사나 신부, 승려처럼 성직을 업으로 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여럿이 함께 예배를 드릴 때는, 이맘을 제외한 사람들이 발끝과 어깨를 나란히 맞추어 길게 줄을 선다고 한다. 이는 모든 신자가 신 앞에 평등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 평등의 형상을 떠올리니, 다시 들판의 흰 짚단들이 눈에 들어온다.


‘흰 실과 검은 실 - 그 말처럼, 이번에는 들판의 짚단들도 온통 흰빛이다. 예전엔 검은 비닐로 덮인 짚단도 많았는데, 이제는 흰색 일색이다.


그 광경은 마치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남성들이 입는 흰옷, 갈라베야(galabeya)를 입고 이맘 뒤에서 메카를 향해 절하는 모습과 닮았다. 들판 위의 하얀 짚단들이 예배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처럼 보인다.


헐렁하고 통풍이 잘된다는 그 옷, 흰 무명으로 만든다는 그 옷을 나도 한 번쯤 입어보고 싶다. 그러나 그럴 기회는 없을 것이다. 일부러 사서 입을 만한 일도 아니니까.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문득 지중해 연안의 하얀 도시들, 하얀 집들이 떠오른다. 이 풍경은 어쩌면 지중해 연안의 하얀 마을들, 햇살에 눈부신 도시들을 닮아있다.


단순한 들판이라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 안에 이야기가 있다. 비어 있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많은 것이 깃들어 있다. 보려고 하면 보인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마음의 눈에 하나씩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들판 앞에 선다. 텅 빈 듯한 그 자리에서, 흰 실과 검은 실 사이로 스며드는 저녁의 숨결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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