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31
펌프를 샀다. 이름은 ‘한일자동펌프’. 몇 해를 벼르다 드디어 장만한 물건이다. 처음에는 중간 크기의 물뿌리개로 버텼다. 내 입에 익은 이름은 ‘물조루’였는데, 일본말인 줄 알았더니 사투리라고 했다.
그다음 해에는 30미터짜리 호스를 샀다. 한 통으로는 부족해 같은 길이의 것을 하나 더 이어 60미터를 만들었다. 이제 밭 가장자리의 나무들까지 물이 닿았다. 그러다 아래쪽 바위 밭을 새로 사고는, 거기까지 물을 대기 위해 30미터짜리 호스 두 개를 더 샀다. 큰 물뿌리개를 들이고, 이번에는 마침내 모터 펌프를 장만했다.
김해의 펌프상 주인이 물건을 건네며 한 말이 인상에 남았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식물이건 물은 생명의 필수조건 아닙니까. 그 물을 콸콸 흐르게 하는 펌프를 판다는 게, 참 보람 있는 일이에요.” 그 말을 듣는 나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주인은 동안이라, 옆의 안주인보다 오히려 남동생처럼 보였다.
물뿌리개로 두 시간은 걸리던 일을 펌프로 하니 20분이면 족했다. 새로 심은 잔디와 채소, 차나무의 흙이 흠뻑 젖도록 여러 번 물을 뿌렸다. 호스를 잡고 물을 뿌리는 일, 그건 일이라기보다 놀이에 가까웠다.
물 뿌리던 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늦은 오후엔 본격적인 비로 바뀌었다.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위로는 줄기찬 빗줄기가 내렸다. 조심 또 조심하며 운전했다. 이튿날 확인하니 악양에 내린 비는 21밀리. 가을비로는 알맞은 양이었다.
밖에 수도를 설치했다. 벼르던 일이다. 위쪽 수도꼭지는 평소에 쓸 용도이고, 아래쪽은 밭으로 물을 보낼 호스 전용이다. 지금은 임시로 위의 꼭지에 호스를 연결해 두었다.
물은 연못에서 끌어온다. 관을 묻었으니 말하자면 내 나름의 상수도다. 둑을 넘어온 물은 큰 통에 모이고, 그 통이 곧 수원지(水源池)가 된다. 조만간 더 큰 통으로 바꾸고, 모터 펌프를 통해 실내 싱크대와 바깥 수도에 물을 끌어올 예정이다. 이후엔 여과장치도 설치할 생각이다. 물은 가재가 살 만큼 맑다. 일급수다. 이대로도 충분히 좋다.
수도꼭지를 트니 ‘솨―’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좋았다. 호스를 잡으니 묵직했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좋았다. 실제보다 더 좋으랴만, 그래도 좋은 건 사실이었다.
펌프를 돌리고, 호스를 쥐고, 물이 솟구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삶이란 것도 결국 이렇게 스스로 흐르게 하는 일 아닐까. 누군가 끌어다 주는 물에만 기대 살다 보면, 어느새 마른 밭처럼 딱딱해진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내 손으로 물길을 내고, 물을 올리고, 흙을 적시며 살아야 한다. 그게 나에게는 ‘나름의 상수도’를 갖는 일이다.
스스로의 손으로 자기 삶을 적시고 돌보는 일. 그것이 자립의 다른 이름이다. 물은 아래로만 흐르지만, 사람은 그 흐름을 거슬러 올릴 수 있다. 펌프를 통해 물을 끌어올리듯, 우리 마음속의 생명력 또한 그렇게 길러야 한다.
기계의 소리가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로 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안다. 이 작은 펌프 한 대에도 삶의 철학이 담겨 있음을. 물은 흘러야 하고, 사람은 흘리며 살아야 한다. 그 흐름 속에서 오늘의 나는 내 몫의 삶을 조금 더 깊이, 그리고 맑게 길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