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102
혼자 내려와 지낼 때면, 밥을 먹고 난 뒤 그릇을 큰 대야에 담아 뒤편 연못으로 가져가 씻곤 했다. 빨래도 마찬가지였다. 비가 오면 비를,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그릇을 닦았다. 눈이 자주 내리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3년쯤을 지냈다. 작년에 데크 테라스에 지붕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그 아래서 설거지했다. 걸레도 그 아래서 빨았다. 지붕이 생기기 전과 후는, 내 생활에서 근대화 이전과 이후만큼의 차이였다.
지붕 아래 테라스에서 쭈그리고 앉아 쌀을 씻고, 그릇을 닦고, 걸레를 빠는 내 모습을 누가 보면 청승맞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물론, 이건 나 혼자 내려와 며칠씩 지낼 때의 이야기다.
싱크대 설치는 내가 직접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DIY는 아니다. 하지만 업자를 부른 것도 아니니, 완전히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DIY란 생활공간을 스스로 쾌적하게 만들고 고치는 일, 즉 Do it yourself의 약자다.
김해의 H는 이런 일에 능숙하다. 그는 컨테이너 공간에 맞춰 도면을 직접 그린 뒤, 김해의 싱크대 제작 공장에 가서 설계도대로 절단하고 필요한 부속품을 사 와 설치했다. 이전의 테라스, 창고, 원두막(정자) 등도 모두 그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 옆에서 보조했다.
결과적으로는 ‘설치된 싱크대’이지만, 그 과정에는 설계부터 제작 의뢰, 부품 구매, 운반, 설치까지 수많은 손길이 있었다. 그래서 더 눈부시다. 말하자면 ‘빛나는, 그래서 눈부신 싱크대’이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싱크대가 실제로 반짝인다. 평소엔 당연하게 여겨지는 싱크대지만, 산기슭 이곳에서는 새삼스럽고 특별하다.
창밖으로 악양 평야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제는 쭈그리고 앉는 대신, 전망 좋은 창 앞에 서서 설거지할 수 있다. 청승은 덜 느끼고, 아마 콧노래 하나쯤 흘러나올 것이다.
밖으로 나서니 구절초가 앞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늦가을 국화과의 야생화들을 한데 묶어 ‘들국화’라 부를 때는 편했지만, 각 꽃의 이름을 익히려면 쉽지 않다. 금세 잊는다. 그래도 이 구절초만은 유난히 생생하다. 다른 들국화들은 이미 시들었는데, 이 꽃만 팔팔한 건 내가 뿌리는 물을 자주 맞아서일 것이다. 갈 때마다 호스로 물을 흠뻑 뿌려주었더니 맑고 단단하게 고개를 들고 있다.
길뫼재의 지킴이들이 있다면, 범이와 호비, 숙진암, 그리고 바로 이 구절초일 것이다. 뒤 언덕의 꽃댕강, 차나무, 어린 탱자나무가 잘 자라길 바라며 오늘도 물을 마구 뿌린다. 그러면 돌담의 바위들도 깨끗해진다.
어릴 적, 깨끗한 것을 ‘깨끔하다’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팔팔, 생생, 깨끔’이라는 말을 화두처럼 외워본다. 몇 걸음 산책할 때면 입으로 “팔팔, 생생, 깨끔”을 구호처럼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