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의 상큼한 바람

두충나무 숲과 사르트르 091126

by 로댄힐

뒤로 갔다. 물론 길뫼재에 왔을 때 뒤로 오르지 않은 적은 거의 없다. “뒤로 가야지. 천천히 걸음 떼어 올라가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뒷마당의 상큼한 바람’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라서였다.


뒤의 숲, 버려진 숲으로 향했다. 아니, 숲이라기보다 밭이라 해야 맞다. 나무가 서 있는 밭. 그래도 나는 그곳을 숲이라 부른다. 반 뼘 남짓한 땅이지만 나무들이 총총히 서 있어 봄·여름·가을엔 잎이 무성하다.


수익을 위해 심었으나 여의치 않아 내버려 둔 곳, 그래서 ‘버려진 숲’이다. 선목(仙木), 혹은 사선목(思仙木)이라 불리는 두충나무가 자란다. 버려졌어도 나무는 여전히 선(仙)이다. 생각하는 나무(思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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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보니 나무에서 사색의 향이 난다. 겨울, 벗은 나목 사이로 바람이 스친다. 반 뼘의 이 숲은 길뫼재의 뒷마당이다. 올라가는 뒷길은 저 아래에서 길뫼재 여기로 올라오는 앞길보다 한결 완만하고 포근하다. 밟는 발바닥이 그렇고, 바라보는 눈이 그렇다. 사선목, 이 숲은 내게 뒷마당이다.


바람이 분다. 뒷마당의 상큼한 바람이다. 이 바람이 내게 생각의 실마리를 건넨다. 물론 이 글의 생각을 모두 이곳에서 떠올렸다는 뜻은 아니다.


실존주의 사조를 떠올린다. 줄리엣 그레코의 검은 옷, 반항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가벼운 문체 속에서도 실존주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실존주의가 한 시대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 이후 새로운 세대와 한 철학자의 절묘한 만남 덕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1945년 9월에 끝나자 젊은 세대는 전쟁 전의 낡은 사상에 종언을 고했다. 기존의 틀을 부정하고, 아카데믹한 형식을 벗어나려 했다. 그때 그들이 발견한 것이 바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였다.


실존주의가 특히 젊은이들을 끌어당긴 이유는 ‘인간의 우연성’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이며, 따라서 우리의 삶에는 본래적인 의미나 가치가 없다는 것. 이것이 실존주의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사상에는 니체적 절망감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비장한 절망이 전후의 폐허 속에서 젊은이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의미도, 목표도, 가치도 없는 삶 속에서 오직 자신이 자신의 삶을 구축해야 한다는 사르트르의 사유는 강렬했다. 마치 백지 위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듯, 인간은 자기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핵심인 ‘절대적 자유’다. 내 인생에 관한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며, 그 책임 또한 나 자신에게 있다. 변명도, 전가도 없다.


‘내던져진 존재’라는 실존의 우연성이 전후 세대의 감성과 맞아떨어졌다면, 실존주의가 제시한 ‘무한한 가능성’은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사르트르는 젊은 세대에게 청량제였고, 경직된 강단 철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의 숨결이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사르트르가 있었다. 후덥지근한 좁은 방에 갇혀 있던 우리에게 그는 신선한 공기였으며, 시원한 뒷마당의 상큼한 바람이었다.” - 철학자 들뢰즈의 회고다.


11월의 끝자락, 한 해의 날과 달(日月)을 헤아려 본다. 그 달들과 날들이 내 뒤에서 나무들처럼 선다. 마치 두충나무 숲처럼. 그것이 내게는 ‘올해 숲’이다. 바삐 걸어온 시간, 아쉬움은 없다. 있다면, 너무 서둘러 걸었던 그 종종걸음이 아쉬울 뿐이다. 오늘은 유독 느린 걸음으로 이곳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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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올해 숲’의 나무들도, 뒷마당의 이 ‘버려진 숲’의 두충나무들처럼 생각하는 나무였으면 좋겠다. 버려졌어도 곧은 나무들, 그 위로 부는 바람은 상큼하고 온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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