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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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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바가지는 본래 “박으로 만든 다목적 그릇”을 뜻한다. 그래서 ‘똥바가지’라 하면 당연히 똥을 푸는 바가지, 즉 박 바가지를 말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똥바가지’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철모 바가지, 화이바 바가지, 양철통 바가지 등 각양각색이다. 옛날 우리 집에도 이런 바가지들이 하나쯤은 있었다. 화이바는 군인들이 철모 안에 쓰는 '파이버'인데 우리 입엔 화이바가 더 익숙하다.

지난해에는 자루가 없는 작은 고무 물통으로 깻묵 거름을 퍼 나르느라 손에 냄새가 오래 남았다. 그때부터 ‘자루가 긴 바가지’를 꼭 마련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철물점에 가면 있을 것 같으면서도, 왠지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망설였다. 그러던 중 하동 읍내 시장의 금물점(金物店)에 들러 “자루가 긴 바가지를 구하고 싶다”라고 했더니, 할머니 사장이 단번에 말했다.


“똥바가지?”


그 순간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다.


“맞다, 바로 그거!”


그동안 입 밖에 내기 쑥스러워 피해 왔던 단어가 이렇게 정답처럼 튀어나오자, 속이 시원하게 뻥 뚫렸다. 금기어를 입으로 내뱉는 순간의 묘한 해방감이랄까. 괜히 길게 설명했던 내가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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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묵을 삭히는 큰 거름통이 두 개나 있다. 올해 봄부터는 그걸 퍼 나르는 일이 전혀 힘들지 않게 됐다. 자루가 긴 똥바가지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이제 거름을 퍼서 뿌리는 일이 시원하고 즐겁다.


똥바가지의 효용에 대해 생각해 본다. 똥바가지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농부의 손길을 덜어주는 지렛대이자, 노동의 지혜가 응축된 생활 도구다. 자루가 길어 허리를 굽히지 않고 푸거나 뿌릴 수 있어 몸의 부담을 크게 줄인다. 푸는 각도와 힘의 배분만 익히면, 물이나 거름, 재 같은 것도 손쉽게 다룰 수 있다. 똥바가지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작은 발명품’이자 ‘노동의 기술’이라 할 만하다.


농사는 땅과의 대화이고, 도구는 그 대화를 돕는 통역자다. 똥바가지 하나에도 농부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힘을 덜기 위해 길게 만들었지만, 그 길이 또한 ‘시간의 길이’를 상징한다. 나이 들수록, 허리가 굽을수록 도구는 더 길어지고, 손끝의 기술은 더 섬세해진다. 도구의 변화는 삶의 변화요, 노동의 진화다.


또한 똥바가지는 ‘순환’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때 버려진 것을 거름으로 바꾸고, 그 거름이 다시 생명을 틔우는 과정 속에서, 똥바가지는 ‘생명의 도구’로 자리한다. 흙과 사람, 그리고 생명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다.

도시 사람에겐 낡고 투박한 물건으로 보일지 몰라도, 농사꾼에게 똥바가지는 손의 연장이고 마음의 도구다. 똥바가지를 들면 일의 무게보다도 삶의 리듬이 느껴진다.


똥바가지질을 하며 땀 흘리는 순간, 나는 ‘일의 의미’를 다시 배운다. 일은 고됨이 아니라, 흙과 내가 이어지는 통로이며, 그것이 바로 농사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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