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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롭긴 마찬가지

사과꽃, 살구꽃 100501

by 로댄힐

사과꽃


아래 숙진암 밭으로 내려왔다. 사과꽃이 선명하다. 심을 때엔 그저 곧은 가지 하나뿐이었다. 그 묘목을 흙 속에 묻을 때,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땅이 척박하고, 제대로 돌봐 줄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잘 자라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묘목이 해를 넘기더니, 이 봄에 꽃을 피웠다. 그것도 사과꽃이다. 내 손으로 심은 나무에서 이렇게 맑고 단정한 꽃이 피어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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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밭에서 사과꽃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사과꽃은 내게 먼 꽃이었다. 예전엔 사과밭이 흔하지 않았기에, 경부선 열차를 타고 대구나 경산 근처를 지날 때 차창 밖으로 멀리서 바라보던 꽃이 바로 사과꽃이었다. 그래서 사과꽃에는 묘한 경외감 같은 것이 있었다.


심은 지 3년 만에, 비록 몇 송이뿐이지만 사과나무가 꽃을 달았다. 위쪽 밭에 한 그루, 바위 밭에 세 그루, 모두 네 그루다. 그중 한 그루는 살아남지 못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분홍빛 봉오리들이 아직 남아 있다. 햇살에 반짝이며 피어 있는 그 한 송이를 바라보니 마음까지 훤해진다.


세월이 더 흘러 사과가 제대로 열리면, 제법 수확량이 될 것이다. 그때는 지인들에게 작은 상자로 나누어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과꽃, 우리 밭에서 피었어도 경이롭기는 마찬가지다. 꽃은 자연이 주는 기적이며, 묘목은 그 기적을 품은 약속이다. 내가 한 일이라곤 흙을 파고, 물을 주고, 바라봐 준 것뿐인데, 그 속에서 생명이 스스로의 힘으로 피어났다.


살구꽃


매실 알이 성냥알보다 커졌다. 불과 보름 사이에 이렇게 자란 것이다. 성큼 커버린 매실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렸다. 작년보다 다섯 배는 많아 보인다. 그러나 앞집 염소 영감님은 올해 매실 농사는 이상 저온으로 설농일 거라고 했다. 그럴까? 풍년처럼 보이는 건 그저 겉모습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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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살구나무를 옮겨 심을 때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얼어 죽지 않을까 걱정이 컸다. 몸통만 남기고 가지를 거의 다 잘라내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봄이 와도 순이 돋을 기미가 없었다. 아니, 아주 희미하게 곁가지에서 움이 트는 듯 보이긴 했다.


그러다 봄이 완연해졌을 무렵, 나무가 살아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움이 고루 돋아 무성해진 것이다.


꽃이 서너 송이 피었다. 신기했고 고마웠다. 그런데 지금 보니 열매를 두 개나 달았다. 그것도 제법 큰 살구다. 바로 옆에는 복숭아나무가 있으니, ‘복숭아꽃 살구꽃’의 그 살구다. 경이롭다.


살아준 나무가 고맙다. 엄동설한에 옮겨 심었는데도 꿋꿋이 버텨준 살구나무가 고맙다. 길뫼재 초입의 그 살구나무는 앞으로도 굳건히 자라날 것이다.


까치 부부가 밭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걸어간다. 뒤이어 산꿩 부부도 걸어간다. 꿩은 아무래도 늙은 부부 같다. 산꿩 내외의 집은 바로 저기, 우리 밭 아래 밭에 있다.


압박


둘째 아이의 쎄울 혼사를 앞두고 ‘편의 압박(?)’이 컸다. 그 압박이란, 햇빛에 얼굴이 더 그을리면 결혼식에 데리고 가지 않겠다는 것.


그래서 봄의 절정이었지만 지난주엔 내려오기를 포기했다. 편은 손 관리에도 신경을 쓰라며, 몇 달 전부터 당부했다. 시커멓고 투박한 농사꾼의 손으로 아이의 손을 잡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웃었다. 예식용 흰 장갑이 다 감싸줄 테니,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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