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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앉을자리

탁자가 놓일 자리 100508

by 로댄힐

자재 구입


목재를 한 차 샀다. 광양까지 직접 가서 ‘건우하우징’을 방문해 주문한 목재다.


처음엔 1톤 트럭으로 보낸다더니, 나중에는 2.5톤 트럭에 실어 보낸다고 했다. 그러려니 하고 기다렸다.


잠시 후, 트럭이 동매 마을회관 앞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내려가 길이 보이는 밭 입구에서 기다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헉헉’ 소리가 생각보다 크다. 목재 양이 그리 많지 않아 금세 올라올 줄 알았는데, 왜 저리 힘들어하며 늦어지는지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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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트럭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아연실색! 요즘 보기 드문, 가장 낡은 화물차였다. 너덜너덜 떨어진 철판, 덕지덕지 녹슨 페인트, 끈으로 묶은 범퍼, 달랑거리는 번호판….


이런 차로 보낼 줄 알았더라면 말렸을 텐데, 이미 온 걸 어쩌랴.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으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퍼지지 않고 달려온 차에게, 그리고 헉헉거리며 내리는 기사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운전석에서 내려서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다가오는 빼빼 마른 기사,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기 자리 참 좋네요. 돈 없는 우리는 꿈도 못 꿀 자리인데요.”


전라도 사투리가 담긴 그 표정이 오래 남는다.


“돈을 채서(빌려서) 산 거야요.”

“우찌 갚을라꼬요?”


음료수를 건네자, 그는 벌컥벌컥 마신다. 그가 흘린 물방울에서, 봄이 다 가버렸음을 새삼 느낀다.


이 목재는 6인용 일체형 탁자를 만들 나무다. 그리고 그 탁자를 놓을 데크를 만들 나무이기도 하다.


생태 화장실


탁자 만드는 일은 잠시 미뤄두고, 먼저 생태 화장실을 지었다. 하루 반이 꼬박 걸렸다. 한여름엔 샤워 공간으로도 쓰일 칸이다. 그리고 그 옆에, 탁자를 놓을 자리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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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놓을 자리


지난해 만든 데크 옆으로 새 데크를 이어냈다. 첫날엔 밤 8시가 넘도록, 둘째 날은 새벽 5시부터 다시 시작했다. 도목수이자 사수인 H는 묵묵히 일하고, 나는 곁꾼이자 조수로서 헉헉거리며 뒤를 따른다.


탁자 자리를 완성했다. 아직 마무리가 남았지만. 그 위에 탁자를 만들고 나면 저쪽에도 데크를 더 깔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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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들어진 빈자리 — 우측 데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비록 봄은 이미 떠나가고 있지만, 저 자리는 봄의 자리구나. 하지만 다 간 봄이 그 자리에 다시 앉을 리 있겠는가. 아마 여름이, 탁자가 놓이기도 전에 와서 그 자리에 앉을 것이다.


탁자엔 파라솔을 꽂을 예정이다. 색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가버린 봄의 색이었으면 좋겠지만, 결국 여름의 원색으로 결정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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