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일과 조수 노릇 이야기 100510
어느 쪽이 더 작고 큰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 새알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매실이다. 새알보다는 작지만 성냥 알보다는 크다. 매실나무는 손이 덜 가는 나무라지만, 나에게는 1년 내내 마음을 쏟는 존재다. 그래서일까. 열매가 커가는 걸 바라보는 마음은 그저 기쁨이 아니라 환희다.
염소 영감님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고로쇠나무는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아니, 이제는 자기보다 큰 나무들의 그늘을 밀어내고 스스로 햇살을 차지하려는 듯하다. 내년 봄엔 망설임 없이 고로쇠 수액을 채취해 볼 생각이다. 그건 단순한 채취가 아니라, 이 나무와 나 사이의 관심과 인연의 표시일 테니까.
들깨와 참깨는 씨도, 새싹도 작다. 그러나 그 작은 생명들이 흙을 뚫고 올라와 점점이 자리 잡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비롭다. 도라지와 더덕은 훌쩍 자라 버린다. 작년에 떨어진 씨앗들이 자라 만든 이랑은 두 뼘 남짓하지만, 그 속에는 계절과 생명이 차곡히 쌓여 있다.
더덕밭을 김매는 일은 다른 밭일보다 수월하다. 그 향기가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 때문이다.
작년 봄, 숙진암 바위 곁에 심은 손바닥만 한 묘목이 이제야 나무의 형체를 드러낸다. 바위는 거대하고 나무는 아직 유아다. 하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나무가 바위의 키를 넘는 그날, 비록 나는 늙어 있을지라도, 그 모습을 꼭 한 번은 볼 것이다.
낮에는 밭일을 하고, 오후엔 목수의 조수 노릇을 했다. 밭일을 할 때는 햇살 아래, 조수 노릇을 할 때는 그늘 속이다. 햇살은 뜨겁고, 그늘은 시원하다.
그러나 햇살 속의 노동이 더 힘들지라도, 그 속에는 생명이 자라는 기쁨이 있고, 그늘 속의 일에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기쁨이 있다. 햇살과 그늘, 두 세계를 오가며 하루를 산다.
그런데 올해는 계절이 늦다. 예년의 사진을 보면 이맘때면 붓꽃이 피고 찔레꽃이 만발했지만, 올해는 아직이다. 모란도 예년엔 4월의 꽃이었는데, 이제야 5월의 꽃이 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계절이 빠르다. 기온이 높아 밭일을 멈춰야 할 만큼 덥다. 아카시가 피지 않아 “봄날은 간다”라 말할 수는 있어도, 이 더위라면 차라리 “봄날이 갔다”라고 해야 할 판이다.
덥다. 계절이 빠르다. 그렇게 또 한 계절을, “실없는 기약” 하나 못 해본 채 보내고 만다. 햇살은 뜨겁고, 그늘은 짧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그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 밭일과 조수 노릇, 햇살과 그늘 - 그렇게 햇살과 그늘을 건너며, 내 하루가 저물었다.
하루를 끝내니 손끝에는 흙의 온기가, 어깨에는 햇살의 무게가 남는다. 해가 지고 나면 밭은 고요해지고, 그늘은 더 깊어진다. 밭은 하루를 마치고 숨을 고르지만, 나는 그 속에서 또다시 내일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