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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두를 내지 못하던 일을 이젠

-지붕 도색 101031

by 로댄힐

지붕 도색을 다시 했다. 2년 전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이번에는 해야 할 일은 더 많았지만, 마음의 부담은 훨씬 덜했다.


2년 전에는 지붕에 올라가는 것부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겨우 용기를 내어 시작하긴 했지만 힘들었고 서툴렀다. 녹슨 부분을 사포질 하는 것이 특히 어렵고 번거로웠다. 그때는 방청 프라이머도 바르지 않은 채 바로 도색했다.


이번에는 철 솔로 녹을 먼저 벗겨 내는 작업을 했다. 사포보다 훨씬 잘 벗겨졌고, 마스크까지 착용하니 마음에도 한결 여유가 있었다. 방청 프라이머를 먼저 두 번 칠하고 나니 첫날 작업이 끝났다. 다음 날에는 유광 갈색 에나멜을 롤러로 칠했다. 붓보다 훨씬 고르게, 수월하게 칠이 먹었다.


칠을 하다 보니 늘 바라보던 풍경임에도 악양 들판과 형제봉 전망이 새삼 아름다웠다. 익숙한 바람인데도 지붕 위에서 맞으니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엄두를 낸다’라는 과정이 훨씬 가벼웠다. 문득, 바이올린이라도 들고 올라왔다면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되었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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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은 러시아의 작은 유대인 마을을 배경으로,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가장 테비예와 그의 가족 이야기를 따뜻하고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가난하지만 유머와 신념을 잃지 않는 테비예가 다섯 딸의 결혼을 둘러싸고 시대의 변화와 맞서는 과정은 당시 유대 공동체의 현실을 넘어, 가족·신앙·정체성을 지키려는 보편적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Sunrise, Sunset’, ‘If I were a rich man’과 같은 명곡이 더해져 감동과 웃음을 함께 선사하는 클래식 뮤지컬로 사랑받고 있다.


칠이 다 마른 뒤 다시 지붕에 올라섰다. 서서 내려다보니 세상이 더 환히, 더 좋게 보였다. 하지만 풍광은 이미 겨울 초입이다. “한여름 소나기에도 굳세게 버틴 꽃들”이 하나둘 시들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11월이 오기 직전, 계절의 경계에 선 풍경이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라는 생각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장면, 일종의 ‘스러져감의 미학’이 눈 아래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윤도현의 노래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아니어도, 생각이 멈추지 않는 ‘지붕 위’였다. 사색이라기보다는, 지붕 위의 잡념들.


다음 날엔 원두막 마루도 칠했다. 지붕과는 다른, 목재용 페인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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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늘 망설임이 먼저 찾아온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는 손에 익은 방식으로 움직이면 되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 앞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곳에서 지붕을 칠하고, 마루를 손질하고, 작은 구조물을 고쳐 세우는 일들은 겉으로 보면 단순한 노동 같지만, 막상 해보면 내 안의 두려움과 마주하게 하는 작업들이다. “이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매번 고개를 든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작은 성취감이 따라온다. 몸을 움직여 얻은 결과물이 눈에 보이고, 손을 쓴 만큼 주변 풍경이 달라진다. 지붕 위에서 마주한 바람의 감촉, 마루를 칠하며 느낀 나무의 결, 그리고 금세 변해가는 계절의 빛깔이 모든 과정을 조용히 축복해 준다. 이런 순간들은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익숙함 속에서는 찾기 힘든 삶의 생기를 이런 일들이 되살려 준다.


또한 낯선 일을 계속해 본다는 건 삶의 텃밭을 조금씩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해보지 않으면 영영 모르고 지나갈 감정들, 조금의 두려움, 약간의 설렘, 그리고 사소하지만 확실한 기쁨 등이 이 작은 시골집에서 반복적으로 찾아온다. 가끔은 왜 이런 일을 굳이 스스로 하려고 애쓰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엔 그 과정을 통해 나의 세계가 아주 조금씩 확장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새로운 일, 미지의 세계와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한다. 특별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의 작은 일들, 작은 ‘새로운 일’, 크지 않은 ‘미지의 경험’이 몸과 마음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나를 자꾸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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