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겨울 연습

화덕 만들기 101123

by 로댄힐

화덕을 하나 만들었다. 그동안은 난로에 불을 붙여 써왔는데, 5년 동안 옥외에서 쓰다 보니 난로가 거의 다 삭아버렸다. 새로 살까도 생각했지만, 겨울마다 난로를 들였다가 내놓는 일이 제법 품이 들다 보니 화덕을 직접 만들기로 마음을 바꿨다. 겨울이 끝나면 철거할 생각으로 대충 만들었지만, 제대로 만든다고 해도 내 시멘트 다루는 솜씨로는 이보다 더 나아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께 다녀온 장례 미사가 떠오른다. 11월은 가톨릭 달력에서 위령성월이라 그런지, 이달에 전해지는 부음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요즘 부고는 대개 폰으로 받는다. 늦은 밤에 소식을 듣고 다음 날 문상길에 올랐다. 영안실 3호. 홀로 서서 글자를 하나씩 읽는데, 어쩐지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향을 피우고 절했고, 맞절도 하고 나와서 앉으니, 고인을 추모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떠난 이가 나더러 놀러 오라 한 적도 없고, 자기 집의 목련 그늘이 좋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맞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를 찾아온 건 분명했다. 그래서였을까. 영정사진을 보았을 때 가슴이 울컥해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 함께 앉아 있는 이들 역시 나처럼 미리 오지 못한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 늦게 온 이들끼리 기울이는 술잔일 것이라는 것…. 살아 있을 때는 번번이 미루었으면서, 떠난 뒤에야 겨우 발걸음을 떼는 우리들.


그 미안한 마음에 다음 날 장례 미사에도 다시 갔다. 고별식에서 향 가루를 집어 향로 위에 내려놓았다. 향을 올릴 사람도 적은, 소박한 고별식이었다.


며칠 전 캐낸 돼지감자는 ‘뚱딴지 감자’라더니 웬걸, 상자 가득 노다지였다. 고구마를 캐고, 그냥 두려던 돼지감자까지 캐고 나니 밭은 어느새 텅 비었다. 밭은 이제 침묵 모드로 들어간다.

101123-3.JPG

겨울 동안 밭을 여러 칸으로 잘게 나눌 계획이다. 봄에 실행해도 되지만 생각은 벌써 이 칸에는 무엇을 심고, 저 칸에는 무얼 심을지 하는 궁리로 여기저기 흩어진다. 지금 말하는 ‘칸’은 밭둑으로 나뉜 구획이 아니라, 벽돌로 다시 나눌 작은 구분들이다. 그건 겨울의 일이다.


그 칸들 가운데 하나에는 부겐빌레아를 심을 생각이다. 붉은빛이 강한 부겐빌레아. 이유는 없다. 다만 바다와 맞닿은 곳에서 피어나는 그 꽃을 언젠가 보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와인 빛 바다와 어울린 부겐빌레아라니, 상상만으로도 은근히 마음을 데운다.


화덕을 완성한 뒤 시험 삼아 불을 붙여보니 잘 탄다. 그래서인지 겨울이 기다려진다. 매서운 추위 그 자체를 기다리는 건 아니고, 피할 수 없이 다가올 겨울의 중심부를 마주할 어떤 시간, 그 고요함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불을 피워두고 데크 탁자에 앉아 바라보니 밤은 밤대로, 새벽은 새벽대로 좋다. 눈 내리는 겨울밤, 혼자 나와 앉아 화덕 속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모습을 바라볼 그 시간을 상상한다.


101123-2.JPG

겨울 앞에서 내가 하는 일들은 어쩌면 모두 ‘겨울 연습’ 인지도 모르겠다. 화덕을 만들고, 밭의 칸을 그려보고, 장작불을 미리 떠올려 보는 일, 이 모든 것이 다가올 계절을 맞기 위한 몸의 연습이자 마음의 예행연습이다.


언젠가 본격적으로 찾아올 차갑고 길고 고요한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나는 미리 손을 움직이고 마음을 달구며 천천히 준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겨울은 더 이상 막막한 계절이 아니라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또 하나의 깊은 시간으로 변해 간다. 이것이 아마도, 내가 이곳에서 익혀가는 ‘겨울 연습’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엄두를 내지 못하던 일을 이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