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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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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이 벽돌을 구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들었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가격과 규격, 쓰임새를 비교하느라 적잖은 품이 들어갔다. 그렇게 선택한 것은 결국 표준 규격의 보통 시멘트 벽돌이었다. 보도용 시멘트 벽돌은 단가도 높고 하동에서 취급하는 곳이 없었고, 규격이 큰 황도 벽돌은 구할 수는 있었지만 지나치게 비쌌다. 표준 규격의 적벽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개당 80원짜리 벽돌 1,000개를 주문했고, 배달비를 포함해도 크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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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벽돌로 밭을 나누려는 이유는 간명하다. 농사 규모를 조금 줄여 보려는 것, 그리고 밭과 밭둑을 분리해 무성한 풀을 좀 더 수월하게 관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밭둑에는 잔디를 심을 계획이고, 각각의 칸에서는 더덕·도라지·달래·마 같은 뿌리작물과 몇몇 채소를 화초 돌보듯 키워볼 생각이다.


물론 계획대로 잘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벽돌도 초라하고, 내 손길도 서툰데 구획이 얼마나 단정하게 잡힐까 싶다. 한여름이면 뽑아도 뽑아도 다시 돋아나는 풀의 기세를 과연 이 벽돌 줄이 막아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마음속에는 베르사유 정원의 기하학적 정원처럼, 만다라 도형처럼 오묘하게 나뉜 밭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상상만으로도 제법 힘이 난다.


겨울 내내 밭에서 벽돌을 들고 다닐 생각이다. 막상 다뤄보니 벽돌은 블록처럼 무겁지도 않고, 옮기다가 다칠 일도 적을 듯하다. 한여름에 블록을 들고 옮기다 발등을 찍어 발가락을 다쳤던 아픈 기억도 떠오르는데, 벽돌은 그런 걱정 없이 다룰 수 있다. 하나둘 놓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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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각형 구획을 처음으로 맞춰놓았을 때, 생각보다 모양이 제법 갖추어졌다. 한 장 한 장 벽돌을 들고 바닥의 높낮이를 가늠하며 맞추다 보니, 단순히 흙 위에 벽돌을 올려놓는 일이 아니라 밭의 숨결을 다시 정리해 주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완성된 직사각형 밭은 비록 연습 삼아 만든 것일 뿐인데도 작은 정원의 초입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연습 삼아 만든 작은 직사각형 하나가, 앞으로의 겨울을 어떻게 보낼지 조용히 알려주는 듯했다.


이튿날은 도랑을 따라 시멘트로 밭둑을 정비하는 데 온종일을 보냈다. 물길을 바로잡고 나니 연못에서 흘러나오던 물이 더 이상 밭으로 스며들지 않아, 장마철이나 해빙기에도 밭이 질퍽해지는 일이 줄어들 것 같다. 물길이 새지 않으니 주변 정리도 한결 수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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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이 물을 식수로 쓰는 범이와 호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길을 반듯하게 정리해 두니 물이 더 맑게 흐르고, 두 녀석도 더 안전하게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두막과 앵두나무 사이의 공간을 넓게 포장해 두니 허드렛일을 하기에도 훨씬 편해졌다. 물을 뜨고 장작을 옮기고, 작은 공구를 올려놓아도 안정적인 작업 공간이 생기니 동선이 눈에 띄게 자연스러워졌다. 작은 정비지만, 앞으로의 일상이 한층 단정해질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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