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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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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나는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시간은 늘 나를 향해 정면으로 다가온다. 마주 오는 사람처럼, 어떤 인연처럼, 시간은 한순간도 나를 비켜 지나간 적이 없다. 바람은 앞에서 불면 맞받아 걸으면 되고, 뒤에서 불면 어깨를 조금 내어주면 된다. 그러나 시간만큼은 피할 수도, 돌아설 수도 없다. 방향을 바꾸어 걷는다 해도, 시간은 여전히 그 길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문득 생각한다. 내가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를 향해 하나의 길을 깔아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가끔 ‘시간의 흐름’을 반대로 상상해 본다. 내 발뒤꿈치 뒤, 지나온 자리에서 날아와 나를 지나쳐서 저기 앞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말이다. 하지만 ‘어제–오늘–내일’이라는 익숙한 인식의 틀은 그런 시간의 운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미래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라는 흐름 속에서 하루를 살아왔다. 그러나 시간은 정말 그런 단선적인 흐름만을 가질까.


우주 어디에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사라져 간 과거가 앞서 걸어가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뒤에서 나를 밀어주며, 내가 사는 오늘이 그 두 물결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얇은 막에 불과한 곳. 어쩌면 우리가 ‘선’이라고 부르는 시간은, 더 큰 차원의 ‘면’이거나 ‘둘레’ 일지도 모른다.


숙진암과 마주한 지 어느덧 다섯 해. 처음 바위를 보았을 때의 낯섦은 사라지고, 이제 그 앞에 서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 온 존재를 다시 만나는 것처럼 마음이 잔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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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는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온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시간을 걸어 여기까지 온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걸어온 시간의 끝에서 바위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다 옳다. 바위는 나에게 내일이고, 시간을 품은 육중한 침묵이며, 그 자체로 한 세계였다.


나는 바위를 품어본다. 차갑고 묵직한 표면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바위를 품는 것이 아니라, 바위가 나를 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바위를 닮고 싶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고, 오랜 시간의 무게에도 무너지지 않으며, 존재의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한 형상…. 꿈꾸면 바위가 나를 닮을 수 있을까. 바람이 지나간 자리의 결을, 시간의 흔적을, 묵언의 사유를 나 역시 품을 수 있을까. 아니, 꿈꾸면 내가 바위로 될 수 있을까.


내일이 왔다. 그리고 오늘이 되었다. 오늘은 다시 내일에 자리를 내어줄 것이고, 내일은 또다시 오늘을 향해 걸어올 것이다. 이렇게 ‘내일 또 내일’이라는 반복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나이면서, 조금씩 바위가 되어 간다.



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한 해의 막바지에서 다시 숙진암을 바라본다. 잔설 위로 내려앉은 저 바위의 고요 속에, 지나간 날들과 아직 오지 않은 내일들이 서로 맞물려 있다. 나는 그 틈을 지나며 삶을 배운다. 바위가 시간을 품듯, 시간은 나를 품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나는 아는 듯 모르는 듯 미소 짓는다. 내일은 또 올 것이고, 나는 그 내일을 향해 다시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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