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27
도착하니, 쥔장 내외가 먼저 와 까치밥 꽃꽂이를 하고 있었다. 까치밥나무 가지는 집 뒤편 언덕에 올라가 방금 꺾어온 것이라 한다. 눈이 내릴 듯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매서웠다는데도 굳이 언덕에 올랐다니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꽂을 항아리는 또 저 아래 ‘아침 농장’ 주인댁 장독대에서 들고 올라왔고, 탁자 위에는 빨간 초까지 켜 두었다.
“교수님 영명축일을 깜짝 축하하려고요.” 탁자에는 보까지 곱게 펴져 있었다.
연세 많은 노모를 혼자 두고 하룻밤을 비운다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지만, 하얀 집에서 보내는 겨울밤의 정취를 떠올리니 마음이 기울었다. 우리는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 고헌산 깊은 골짜기, ‘Morning Farm’ 속의 하얀 집을 향했다. 새해를 맞이하며 묵은해를 보내는 작은 의식을, 알토 나팔 소리 아래에서 치를 참이었다.
앰프를 켜고 보면대 악보를 펴는 등, 송구의 밤을 준비하고 있을 즈음 마지막 지인 부부가 도착했다. 그들이 펼친 상자 속에는 케이크가 들어 있었다. 2010년 끝자락, 나는 이렇게 조용하지만, 다정한 축하를 받았다. 깊은 산골에서 준비되고 또 실려 온 그 케이크와 까치밥, 그리고 빨간 초는 그해의 마지막 선물 같았다.
이제 연주를 위한 장비가 거의 갖추어졌다. 무선 핀 마이크가 불편해 유선 마이크를 하나 더 구하기로 하고, T자형 스탠드를 샀다. 이번엔 인터넷 대신 부산 서면의 부전동 전자상가를 직접 돌아다니며 장만했다. 나팔을 스탠드 앞에 두고 소리를 불어 보니 음색이 한층 깊어졌다.
색소폰을 불고 노래를 하는 중, 누군가 창밖을 보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나팔을 내려두고 창가로 다가가니, 눈이 바람과 뒤섞여 어둠의 숲을 향해 펄펄 날리고 있었다. 조롱하듯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산중에서 매년 겨울이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한바탕 단정한 군무였다. 송구를 위해 모인 우리에게 자연이 보여주는 축복 같아 가슴이 찡했다.
이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더구나 세밑 아닌가. 그래서 세밑 이 부근에선 회상의 언덕에서 나도 모르게 서성이게 된다. 머리칼이야 가는 세월을 아랑곳할 필요도 없게끔 일찍이 셀대로 다 세었기로 세밑이라고 새삼 거울을 보고 헤아릴 필요 없지만, 이런저런 것들을 무심코 돌아보게 된다.
먼저 서서 보낸 강의실을 돌아본다. 소중한 강의실이다. 그래서 남은 몇 학기가 더욱 소중해진다. 또 보여준 부모에게 보여주는 아이들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그들이 다 하는 최선은 부모인 우리를 매번 기쁘게 했지만, 이해의 그들은 더욱 우리를 기쁘게 했다. 둘째의 혼인에서, 부모인 우리가 만난 예기치 못한 작은 곤경 앞에서 보여준 순발력에서, 맏이의 일터 마련에서, 일터의 자리매김에서 그랬다. 내 몸도 돌아본다. 발이 고맙고 팔이 고맙다. 심장이 고맙고 머리가 고맙다. 그들은 변함없이 나를 지탱시켜 주었다. 잘 돌아준 핸들, 굴러준 자동차 바퀴도 또한….
그날 밤, 눈 내리는 고헌산의 하얀 집에서 우리는 기쁘게 춤을 추었다. 둘 다 춤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지만, 밤은 우리의 손을 잡고 한 번쯤 춰보라며 등을 떠밀었다. 까치밥의 겨울밤, 송구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눈이 많이 내린 것은 아니었으나, 내리막길이라 조심스러웠다. 응달진 곳의 눈은 잘 녹지 않아 해가 뜨고 한참 뒤, 늦은 오후에야 고헌산 하얀 집을 나섰다. 쌓인 눈은 그대로였고, 우리는 조심조심 산길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