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811
봄에 범이와 호비의 집 뒤에 박을 심었다. 가녀린 모종이라 과연 살아날까 걱정했지만, 잘 자라 주었다. 무성한 풀 사이에서 버텨낼까 싶었는데 버텨냈고, 지붕까지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대로 줄기는 지붕을 향해 뻗어 올랐다. 꽃이 피더니 박이 맺혔다. 제대로 클까 하고 마음 졸였지만, 지금 다섯 개가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다.
달린 박은 여러 개였고, 그중 두 개를 먼저 따서 박나물과 박국으로 밥상에 올렸다.
오랫동안 심고 싶었지만 미루고만 있던 박을 이번에 심어 꽃을 보고 열매까지 거두니 마음이 크고 깊게 기뻤다. 박과 박꽃은 가난했던 소년 시절의 흰 꿈이었다. 옥양목보다 약간 덜 하얀 박꽃은 달밤의 순결이었고,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의 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쓰고도 잃지 않던 순결이었다.
태풍 무이파가 몰아치던 8월 7일 일요일, 나는 부산 집에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악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교수님, 밭에 올라와 보니 별 탈은 없습니다. 살구나무 한 그루 쓰러진 것 말고는 농막도, 범이와 호비도, 고추랑 들깨도 다 무사합니다.”
이 정도 호우면 범이·호비의 집이며 농막까지 쓸려갔을지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었던 터라, 그 말은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이어진 목소리는 흥분과 긴박함이 뒤섞여 있었다.
“악양은 악양천을 중심으로 완전히 쑥대밭입니다. 동매마을도 입구가 박살 나서 통행이 안 됩니다.”
당장이라도 악양 길뫼재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참여해야 할 회의 하나와 직접 주재해야 할 회의 하나가 연속으로 잡혀 있어 결국 9일 화요일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제9호 태풍 ‘무이파(MUIFA)’는 마카오가 제출한 이름으로 ‘서양 자두꽃’을 뜻한다. 8월 7일 악양의 강우량은 313mm로, 1998년 지리산 대참사를 불러온 피아골의 300mm보다도 더 많았다. 우리 밭 아래 숙진암이 그때 굴러 내려와 지금의 자리에 멈춰 물길을 갈라놓았기에 동네의 큰 재난을 막았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악양 초입 개치마을에 들어서자 사태의 심각함이 도로와 악양천을 따라 한눈에 드러났다. 정서리 삼거리 악양교에 이르니 다리와 주변 집들은 폭탄이라도 맞은 듯 처참했다. 119 소방차들 사이로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다. 면 소재지에서 동매교까지의 길은 평소보다 훨씬 천천히 가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동매교에 도착했을 때, 들은 이야기로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눈앞의 파괴된 풍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살면서 처음 보는 비였다”며 아직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당 111mm, 악양 기록이라 했다.
마을로 들어갈 수 없어 덕기 중기 마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새로 짓는 집들을 비롯해 악양천 주변 곳곳이 심하게 파손돼 있었다. 옆길로 올라가면서도 혹시나 길이 끊겼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외길도 무사했다. ‘하늘 정원’ 아래 작은 다리는 완전히 박살 나 철근이 상상 이상으로 휘어 있었다. 그래도 우리 밭으로 올라가는 길은 조심스레 지나갈 수 있었다.
길뫼재에 도착하자 범이와 호비가 교대로 울부짖듯 반겨 주었다. 쑥대밭이 되었을 거라 짐작했는데, 넘어진 것은 살구나무 한 그루뿐이었다. 이전에 훨씬 적은 비에도 연못과 도랑, 농막 주변이 어찌 흐트러졌는지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농막이 밀려나거나 물이 들이닥쳤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것이 이번 무이파가 남긴 ‘명(明)’이었다.
지난여름부터 큰비에 대비해 꾸준히 손질한 덕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뿌듯해졌다. 무엇보다도 고마운 건, 이 땅이 자기 자리를 지켜준 점이었다.
무이파가 남긴 또 하나의 선물은 계곡이다. 도랑이라 부르던 밭 끝자락의 물길이 폭우로 넓고 깊어져 작은 계곡 같은 모습이 되었다. 폭우가 오기 전에 내가 미리 걷어낸 풀 덕분인지 물길은 더 깨끗해졌고, 한여름 더위를 잠시 피할 만한 그늘진 자리가 생겨났다.
대폭우 이틀 뒤인 9일 화요일에도 66mm가 내렸다. 예보는 150mm 이상이었기에 주변에서는 내려가는 걸 걱정하며 말렸고, 자식들도 그랬다. 그래도 범이와 호비가 있어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도착해 보니 정전은 아니었다. 지붕도 무사했다. 하지만 물이 들이친 탓에 범이 밥은 국처럼 되었고, 습기로 호비 밥그릇에는 아예 밥이 담기지 않았다.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인 처마 끝 낙숫물과, 들리지 않는 소리인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이곳에서는 늘 곁을 채운다. 계곡 물소리와 빗속에서도 그치지 않는 새소리까지, 이곳의 소리는 모두 배경음이자 하나의 하모니이다.
물받이에 금세 한 대야의 물이 찬다. 떨어지는 소리는 듣기 좋고, 그 물로 씻을 때의 감촉은 부드럽다.
시간당 111mm라는 기록적 호우와 전국 곳곳의 피해를 보며, 안전한 곳이 과연 어디일까 생각하게 된다. 물 좋고 산 좋은 곳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저토록 단단히 쌓은 악양천 제방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망가진 곳은 더 많아졌고 피해도 더 컸다. 동매마을은 양옆의 계곡이 13년을 두고 번갈아 물폭탄을 맞은 셈이었다. 튼튼히 정비한 넓은 도랑도 물길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했다.
범이와 호비의 집 지붕 위 박은, 그래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