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806
감나무의 꼴을 잡는 작업에 착수했다.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무지해서 벌인 실수가 있었다.
감나무와 매실나무는 묘목을 심은 뒤 몇 년간 그대로 두었다가 가지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리며 모양을 만드는 것인데,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가지를 성급하게 잘라버린 것이다. 그 탓에 나무의 형태가 볼품없어져 거의 포기할 뻔했다. 다행히 과수 전문가가 지금이라도 꼴을 잡을 수 있다며 조언을 해주어, 말대로 줄을 늘어뜨려 모양을 잡는 작업을 시작했다.
대봉감나무 다섯 그루와 단감나무 네 그루, 모두 아홉 그루가 위쪽에 있고, 아래 밭에는 이미 형태가 잡힌 고목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로써 감나무는 모두 열 그루다. 이번 8월에 손봐야 할 나무는 고목을 제외한 아홉 그루다.
착수한 첫날, 더위가 너무 심해 시작만 하고 중단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 공중을 보며 끈을 묶는 일은, 땅을 보며 괭이질이나 호미질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겁게 더위가 느껴졌다. 결국 이 일은 아침과 저녁으로 나누어하기로 했다.
올해는 감꽃이 잘 피고 감도 많이 달려 기대가 컸다. 그런데 어느 날 내려와 보니, 그 많던 감이 대부분 떨어져 땅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번 악양의 대봉감 농사는 어느 해보다 설농이라 한다. 고르지 못한 날씨 탓이라고 한다. 나는 벌의 활동 부족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실망을 거두고, 남아 있는 몇 개의 감에 기대를 걸기로 했다.
이튿날, 숙진암 밭뙈기 나무부터 이름표를 달기 시작했다. 나무 수량은 많지 않지만 종류가 다양해 품종과 식재 시기를 자꾸 잊어버리곤 해서, 몇 해 전부터 이름표를 달아야겠다 마음만 먹고 있었다. 미루기만 하던 일을 드디어 시작한 것이다.
서울 국제원예종묘에서 구입해 심은 나무는 품종 기록이 정확해 이름표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매실나무는 품종 파악이 쉽지 않았다. 알고 보니 매실 종류가 워낙 많기도 하고, 흔히 사용하는 ‘청매실’, ‘홍매실’, ‘토종 매실’ 같은 표현이 실제 품종 구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충 부르는 이름이 품종명처럼 굳어진 셈이다.
고로쇠나무 두 그루는 원래 우리 나무였는데, 염소 영감님이 마음대로 가지를 쳐버린 적이 있다. 그 일 이후 나무에 손대지 말라는 뜻을 담아, 잘려 나간 가지에 더 눈에 띄게 이름표를 걸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