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드무 고개 애미다마

잡은 손과 잡힌 손

by 로댄힐

길병이는 풍기와 자기 사이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한참을 뜸 들이다가, 그중 하나를 꺼냈다.

“풍기하고 말이다, 친구들은 잘 모를 끼다만, 드무 고개에서 있었던 일들이 많다.”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드무 고개, 그 고개 넘어 중학교길 다닌 우린 누구나 추억을 가지고 있지.”

대식이도 그 고개 이야기를 했던 게 떠올랐다. 진주 큰 들이나 대평 쪽 사람들이 새벽에 배추나 무를 리어카에 싣고 사천 장날 넘던 고개. 그 뒤에서 밀어주다 책가방을 리어카에 올려둔 줄도 모르고 그냥 내려와 버린 적이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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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무 고개는 축동에서 중학교를 다닌 아이들에게는 쉽게 잊히지 않는 곳이다. 내게도 그렇다. 여무다리와 드무 고개는 그 시절을 통과한 아이들 마음속에 꼭 하나씩 남아 있는 장소다. 고개에는 엿장수 집도 있었고, 고개 중턱엔 작은 점방도 있었다.

읍내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초입의 고개. 중학교 3년은 거의 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보낸 세월이었다. 그보다 앞서서는, 철이 들 무렵부터 빠지지 않고 다니던 나의 성당 새벽 미사 길이기도 했다.

“드무 고개 안다 아이가?”

길병이가 반가운 듯 말을 이었다.

“우리 중학교 다닐 때, 읍에서 집으로 갈 때 철둑 밑으로 내려가면 우측에 나지막한 과자 공장이 하나 있었거든.”

“알지.”

나는 바로 대답했다.

“거기서 과자 사 묵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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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얘기를 듣다 보니 내가 안다고 한 과자 점방은 고개 위에 있는 거였고 길병이가 말한 과자 공장은 고개 아래에 있는 집이었다.

그 집은 집에서 애미다마를 만들어 팔았다. 한 근을 기준으로 팔기도 하고, 소매로는 몇 개씩 세어 팔았다. 길병이와 풍기는 하교 후 집에 갈 때 같이 걸어가며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애미다마를 샀다고 했다.

“한 근 사자.”

그러면 돈은 반반 냈다. 그러고는 그늘 밑에 앉아 하나씩 세기 시작했다.

애미다마엔 설탕이 유난히 많이 묻어 있었다. 굵은 설탕 알갱이가 입안에서 바로 녹아내릴 만큼 달았다. 그걸 들고 조금만 내려오면 정자나무 아래 우물이 하나 있었다. 읍내에서 여무 다리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철교 아래 오른쪽에 있던 그 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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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무 그 우물은 지금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식이는 그 근처에 살던 외팔 아저씨 이야기를 했다. 소풍 날이면 양철동이에 물을 담고 사과를 띄워 사카린을 넣어 팔던 분이었다.

길병이 말에 따르면, 풍기와 그는 그 우물가 그늘에 앉아 애미다마를 똑같이 세어 나눴다. 그런데 풍기는 한 치도 양보가 없었다.

“딱 맞춰서 나눈다.”

남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길병이에게 더 주는 법이 없었다고 했다. 절대로.

“풍기 지 아버지 닮아서 그랬다 아이가.”

길병이는 웃으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길병이는 자기도 성질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말 돌리지 않고 직선으로 내뱉는 성질이라 친구들한테 미움도 좀 샀다고. 그래도 풍기의 고집과 성질은 자기보다 한 수 위였다고 했다.

“와, 대단하더라.”

그 말엔 웃음과 정이 함께 섞여 있었다.

“그때는 섭섭하기도 했지만,”

길병이는 덧붙였다.

“그래도 풍기하고 지금까지 잘 지낸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그날 밤 니 이야기 듣고, 즉 풍기와 이야기 듣고, 내가 마음이 꽂혀서.”

“이거 글로 한 번 써볼라 카이. 나중에 써서 보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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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무 고개는 다반사로 지각을 하던 중학교 시절의 길이었고, 새벽 미사를 혼자 가던 초등학생에게는 공포의 고갯길이기도 했다. 겨울이면 얼어 죽은 주검 위에 덮인 거무튀튀한 거적, 그 위에 내린 서리가 유난히 희게 보이던 기억도 이 고개 초입에 남아 있다.

박하사탕, 건빵, 애미다마가 담긴 유리 항아리들. 먼지가 뿌옇게 끼어 있었지만, 그 항아리들은 언제나 ‘끝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보였다. 고개 아래 푹 꺼진 곳에 코를 박고 있던 점방이 바로 드무 고개였다.

들여다보기는 수없이 했어도, 사는 일은 드물었다. 돈이 없었으니까. 어쩌다 손에 쥔 건빵은 주머니 속에서 몇 번이고 만지작거렸다. 손가락으로 꼬무락거리며 내려오던 고개, 헐떡이며 숨을 고르던 고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길병이와 풍기가 들르곤 했다는 애미다마 만드는 집은 지금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지 않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고개를 넘는 일 자체만으로도 이미 벅찼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집은, 내 기억 속 장소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그려진 풍경에 가깝다. 손에 쥐었던 것은 애미다마였지만, 오래 남은 것은 그걸 반반 나누던 손놀림과, 고개를 함께 넘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어떤 기억은 내가 겪은 것보다, 나중에 들은 말 속에서 더 또렷해진다. 이 글의 많은 장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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