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생각하니 그래도

잡은 손과 잡힌 손

by 로댄힐

키 큰 장다리와 키 작은 꺼꾸리. 그때는 몰랐겠지만, 둘은 이미 콤비였다. 앞장서는 아이와 놓치지 않게 잡아주는 아이, 그 시절의 ‘손잡음’ 하나가 지금까지 이어진 우정의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형편은 결코 아름답다고 볼 수는 없었다. 배는 늘 고팠고, 길은 멀었으며, 어른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었고, 철이 든다는 말은 곧 견뎌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다시 꺼내보면, 그 시절은 이상하게도 한쪽이 반짝인다. 아마도 그 빛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12.png

길병이와 풍기의 이야기도 그렇다. 키 차이는 분명했지만, 그 차이는 우열이 아니라 역할이 되었다. 장다리는 앞에 섰고, 꺼꾸리는 곁에 있었다. 누가 보호하고 누가 보호받는다는 말보다, 함께 걷는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손을 잡은 쪽과 잡힌 쪽은 있었지만, 그 손의 온기는 늘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등하굣길의 흙먼지, 고개를 넘던 숨가쁨, 주머니 속 생고구마와 애미다마의 단맛, 쟁기와 보습을 둘러싼 어른들의 손길까지.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가난과 노동의 기록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살피는 눈길과 책임을 나누는 마음이 함께 있었다. 풍기 아버지가 길병이에게 아들을 부탁했던 장면이 오래 남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것은 부탁이라기보다, 같은 시대를 건너는 사람끼리의 신뢰에 가까웠다.


쟁기를 만들던 길병이 아버지의 손과, 새우 젓 지게를 졌던 풍기 아버지의 어깨는 모양은 달라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끼니를 잇고, 하루를 넘기는 쪽으로.

“그땐 다 그랬다 아이가.”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안 굶기려고 다들 악착같이 살았지.”


어려웠던 시절은 사람을 갈라놓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람을 이어주기도 했다. 어떤 이는 버티는 쪽을 택했고, 어떤 이는 놓아버렸다.


그 선택의 결과는 시간이 지나 생과 사의 간격으로 남았다. 그러나 적어도 어떤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시절은 완전히 어둡지만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를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결국 남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관계’였다.


장다리 경호원이라는 농담 같은 별명, 애미다마를 한 개라도 더 양보하지 않던 고집, 쟁기 만드는 법을 어깨너머로 배우던 시간…. 그것들은 모두, 함께였기에 가능한 장면들이었다. 혼자였다면 버거웠을 길이, 둘이어서 지나갈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가난의 기록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손을 잡아주던 우정의 기억이고, 말없이 책임을 짊어졌던 아버지들의 초상이다.


쟁기와 보습, 여무 다리와 드무 고개, 애미다마와 새우젓이 뒤섞인 풍경 속에서 우리는 자랐다. 부족했지만, 서로를 버리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


생각하니 그래서, 그래도 참으로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고, 손 하나로 하루를 건너던 때였으니까. 가난했지만 정이 있었고, 힘들었지만, 손을 잡을 줄 알았던 시절.

20251230_06075324.jpg

키 큰 아이가 키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걷던 그 길 위에는, 이미 우정이라는 이름의 ‘답’이 놓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답은 세월이 지나도 바래지 않고 누구의 심중에 잠재해 있다가 무딘 내 손끝에서 이렇게 이야기로 다시 살아났다.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1 내 인생에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