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백화등 꽃이다.
지난 번의 기쁜 소식은 노랑무늬 붓꽃(다른 이름으로는 흰 노랑붓꽃)이었는데,
이번의 기쁜 소식은 백화등 꽃이 가지고 왔다.
산기슭 여기 내 처소인 길뫼재의 한 쪽 돌담은 온통 마삭줄에 점령 당하고 있다.
연못 뒤의 돌담은 담쟁이가 점령하고 있고.
그 마삭줄 사이에 하얀 꽃 줄기가 보였다.
며칠 전, 장사익의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이 질 무렵에 말이다.
무슨 꽃인고 했더니 이것 봐라, 백화등 꽃 아닌가.
꽃잎이 다섯 개인 백화등 꽃은 바람개비 같기도 하고, 배의 스크루 프로펠러 같기도 한 꽃이다.
12년 전 내가 이 땅과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
우리 밭 뒷편 돌담 언덕의 마삭줄 가은데서 줄줄이 피어, 별 과자처럼, 등불처럼 빛나던 꽃이었다.
물론 백화등의 '등'자가 등불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몇년 전 어느 날 밭주인이 정비공사를 하는 바람에,
돌담이 허물어지면서 깡그리 뽑혀버린 비운의 꽃이었다.
이식해 두지 않은 것을 내내 후회했는데,
몇 년후 이렇게 나를 찾아와 미소짓고 있는 것 아닌가.
이 봄에 날 찾아 온 하얀 꽃 두 개,
노랑무늬 붓꽃과 백화등 꽃은 내게 크나 큰 기쁨이다.
또 행운이고.
백화등 꽃의 잔잔한 속삭임 또 잔잔한 미소는 나를 자꾸 자기 앞에 발걸음 멈추게 한다.
멈추어 서면 흰 머리의 나에게 백화등 꽃은 어떻게 속삭이고 어떻게 미소 지어야 하는지를 눈짓으로 아르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