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우의 콩밭과 나의 콩 이랑

by 로댄힐


부산 독서아카데미 회원님들, 그저께 화요일, 독서토론 모임에 불쑥 찾아간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갈까 말까를 여러 번 반복하다 내친 발걸음이어서 ‘내가 괜히 주책 떠는 거 아닌가?’ 하는 심적 동요도 없지 않았는데, 책 이야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오래간만에 지적인 담론의 즐거움에 눈치 없이 빠져들고 자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녀와서 내가 가진 『월든』(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을 펼쳐 232페이지의 아래 글을 이렇게 바꾸어 읽어 보았습니다.


그해 (지난) 여름, 나의 동시대 사람들이 보스턴이나 로마에서 미술에 열중하고, 인도에서 명상에 잠기며, 런던이나 뉴욕에서 사업에 열중하고 있을 때 또 부산독서아카데미 회원들이 속옷이 땀에 젖는 줄도 모르고 삼매경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나를 포함한 뉴잉글랜드의 (악양의) 농부들은 이처럼 농사를 열심히 짓고 있었다. 먹을 콩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남이야 콩으로 죽을 쑤든 투표용으로 쓰든 상관할 바 아니겠으나 나 자신은 피타고라스처럼 콩을 싫어하여 콩을 쌀과 바꾸어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비유와 문학적 표현을 위해서라도, 또는 후일 어느 우화 작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누군가가 밭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밭농사는 대체적으로 볼 때 흔치 않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너무 오래 계속하면 정력의 낭비가 될 수도 있었다.]


피타고라스는 자기 교단의 문하생들에게 콩을 먹어서는 안 되고, 떨어뜨린 물건을 주어서도 안 되며. 흰 수탉을 건드리지 말고, 빵을 뜯어서는 안 되며, 빗장을 넘지 말고, 쇠붙이로 불을 휘저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제비가 지붕을 나누어 쓰게 해서는 안 되고 불빛 곁에서 거울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내 밥그릇에는 거의 사시사철 일 년 내내 콩(본디, 팥 등등) 밥이 담깁니다. 그러다 보니 흰밥에서는 백색의 공포가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물론 저는 떨어진 물건을 잘도 줍고, 빵은 뜯어서 먹으며 빗장 담장은 넘을 수 있으면 넘으려 하고, 거울은 아무래도 실내 불빛 아래에서 보게 됩니다. 가마솥 아궁이 막대기는 나무로 된 것이고 흰 수탉은 건드려 볼 기회가 아예 없었으니 이 두 가지는 프로타고라스 계율을 그나마 지키는 게 되네요.


아무튼, 콩 농사를 한번 지어 보려고 몇 년 전부터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오르내리다 보면 남의 밭 콩은 탈 없이 잘 자라 결실을 보는데 우리 밭의 콩은 너무 웃자라거나 벌레의 오찬 만찬상에서 주식이 되어버리거나 하여 쭉정이만 내게 넘겨주는 것이었습니다.

올해에는 마음먹고 콩과 팥을 심었습니다. 과연 콩 심은 데 콩이 났고 팥 심은 데 팥이 났습니다. 우리의 주력 밭농사인 참깨 들깨를 심기 전에 심었는데 그런대로 잘 자랐습니다. 최소한의 농약을 치지 않고 결실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 그렇지만 특히 콩도 그렇습니다. 마을의 농사 장인(匠人)이 누누이 일러준 말입니다. 최소한의 농약, 나로서는 최대한의 농약을 살포해도 그들 세력 앞에는 무력합니다. 그래서 팥은 초반에 좀 수확하고 종반에는 벌레의 공습을 더는 내버려 둘 수 없어 일찌감치 뽑아 버렸습니다.

콩은 아직 이랑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콩을 공격하는 놈,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데, 이번에 우리 상공에서 무력시위를 벌인 이른바 ‘죽음의 백조’라 불린다는 미국의 B-1B 전략 폭격기를 호위하는 전투기보다 더 ‘쎄게’ 보이는 놈들입니다. 그놈들은 농약도 우습게 압니다. 이번에 우리 밭은 과일이건 밭작물이건 또 다른 놈,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놈, ‘미국 선녀’라는 놈들의 공습을 받고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푸근하게 생긴 농약상 주인도 이놈들 출현하기 전에 방제하는 건 몰라도 ‘떴다’하면 그 농사 포기하라고 합니다.


또 아무튼, 그래도 이번에는 콩 타작 한번 하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콩 이랑을 보고 있습니다. 콩 타작 들깨 타작…, 타작마당이 따로 없지만(그 옛날 우리 집엔 타작마당이 따로 있었는데), 가을 끝자락, 겨울 초입에 한바탕 타작 판을 벌여볼 참입니다.


월든에 콩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옵니다. 소로우는 자기 콩밭을 “지치고 힘이 빠져 안식을 즐기는 땅”이라고 말하는 데 나의 콩밭은 내게 어떤 땅인지 따로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소로우는 “비록 비유와 문학적 표현을 위해서라도, 또는 후일 어느 우화 작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누군가가 밭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분의 밭일이야 그렇지만 나의 밭일이야 그렇겠습니까. 그냥 하는 거죠. 나의 밭일이 어느 우화 작가에게 도움을 주겠습니까. “밭농사는 대체적으로 볼 때 흔치 않은 즐거운 일”라고 그는 규정하는데 일정 부분 공감됩니다. 할 때는 ‘쌩고생’이지만 하다가 잠시 그늘에 서서 바람을 쐴 때는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즐거운 밭일이 됩니다. 고된 즐거움이라고나 할까요.


부산 독사 아카데미의 10월의 책 『월든』은 독서토론회 다녀온 후 다시 읽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반사경처럼 나의 농사 역사를 반영해주는 책으로, 나의 길 어느 커브에서 길목을 지키는 도로 반사경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농사일 초심을 반추합니다. (길뫼 배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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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앞에서 아직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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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뽑힌 팥과 고추의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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