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날에는 / 소리새)
다른 해 봄보다 이 봄에 현호색과 제비꽃, 금창초의 얼굴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지난겨울의 혹한에 피해를 입은 식물이 많은데 이들을 비롯한 어떤 야생화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길뫼재의 경우 차나무와 꽃댕강은 가지가 많이 말라죽었고,
그래서 곡우 전후에 따던 새 순을 어제서야 겨우 조금 땄으며,
사과나무 세 그루는 아예 꽃을 피우지 않는다.
옮겨 심은 한 그루만 꽃을 겨우 몇 개 달았다.
길뫼재의 밭이랑에는 잔디에는 현호색이 주로 나고,
밭둑의 돌 틈에는 제비꽃과 금창초가 여기저기 많이 나서 이 구석 저 구석을 지키고 있다.
현호색(玄胡索)은 씨앗이 검은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꽃 모양이 종달새 머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현호색을 코리달리스(Corydalis, 종달새)라고 부른다고 하고.
그런데 종달새 소리를 한번 들어보려고 봄이 올 때마다 귀를 기울였지만 아직 듣지 못했다.
내가 머무는 이 산기슭에서는 내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지만 다른 어디 보리밭 어귀에서는 귀 밝은 사람에게 종달새 소리가 포착되는지도 모르겠다.
종달새, 종다리가 더 맞는 표현이라고 한다.
종다리의 옛말은 노고지리이고.
종다리는 봄과 바로 연결되는 새인데 봄은 왔어도 종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지 못해서 그렇지 내 부근에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른다.
“하늘에서 굽어보면 보리밭이 좋아 보여,
종달새가 쏜살같이 내려”와야 하고.
“밭에서 굽어보면 저 하늘이 좋아 보여,
다시 또 쏜살같이 솟구치는” 종달새, 보고 싶다. (인용은 윤석중의 ‘종달새의 하루’ 일부)
긴 기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의 부음을 이 봄에 연속 세 번 듣는다.
갈 때가 되어서 가신 발걸음인지는 모르지만 꽃이 피어 있는 날들의 봄에 듣는 부음은 울림의 여운이 좀 오래간다.
제비꽃을 본다.
현호색, 금장초, 제비꽃의 키가 너무 작아 앉아서 본다.
모란이 피기 시작했다.
소리새의 노래를 듣는다.
“꽃이 피는 날에는 / 나는 사랑할래요 / 따스한 눈길로 그대를 / 난 사랑할래요 / 바람 부는 날에는 / 나는 노랠 불러요 / 노을빛물들은 들녘에 / 노래를 불러요.”(소리새의 ‘꽃이 피는 날에는’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