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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쉬면서 보니 포로 트라야노

로마03/바실리카 울피아(Basilica Ulpia)의 기둥들을 보면서

by 로댄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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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S. Maria Maggiore)에서 베네치아 광장(Piaza Venezia)을 목표로 걸어가는 길, 걷다 보니 걸어서 가기엔 가깝지 않은 길이었다. 한국식품(Alimentari Coreani)이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이 있는 골목길을 따라 계속 가니 그늘이 자주 나와, ‘카보아 지하철역’을 지나 큰길을 계속 걸을 때도 무더위를 견딜 수 있었다. 한참 가니 오른편에 팔라티노 호텔(Grand Hotel Palatino)의 글자가 보인다. 말하자면 카보아 로(Via Cavoua)를 따라 베네치아 광장 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스마트 폰의 ‘구글 지도 길 찾기’ 안내에 따라 이 골목 저 골목을 넘나들면서 부지런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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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속 조금 더 걸어가니 기둥들이 도로보다 낮은 곳에 줄지어 서 있는 유적지가 왼편에서 나타난다. 나무 그늘도 있고 앉을자리도 있고 또 앉아서 쉬는 사람들도 많아 우리도 잠시 앉아 쉬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가 포로 로마노? 아니면 어디?” 이번 로마 여행을 위해 따로 익힌 로마 지식이 있지 않았는지라 넓은 유적지 터를 보고 내 머리에 먼저 떠오른 생각이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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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쉬면서 확인해보니 여기는 포로 로마노가 아니고 포로 트라야노(Foro Triano)의 바실리카 울피아(Basilica Ulpia) 유적이었다. 13대 황제인 트라야누스(98~117)는 로마 역사상 최대 영토를 확보한 황제로서 그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포로’가 바로 이 포로 트라야노이고, 그 곁에 있는 바실리카 울피아는 그의 이름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울피아가 있는 포로 트라야노는 AD 106년 다키아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트라야누스가 조성한 포로이고. 트라야누스 황제는 로마 오현제(五賢帝) 중 한 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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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카는 본래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재판소, 회의장, 관공서 등의 용도로 사용된 직사각형 구조의 대규모 공공건물인데, 그리스도교 공인 후에는 이 바실리카를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의미가 확대되었다. 나아가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을 의미하며 마지막으로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지지 않았더라도 유럽의 유서 깊은 대성당을 바실리카로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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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오현제. 좌로부터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아누스, 안토니우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3) 로마 오현제(Five Good Emperors)란 로마 제국의 전성시대에 잇따라 재위한 다섯 황제를 말하는데 이 시대는 세습이 아니라 원로원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을 황제로 지명하였기 때문에, 훌륭한 황제가 속출하여 이런 호칭이 생긴 것이라고 한다.


첫째, 오현제 시대를 연 12대 네르바(Nerva 96~98)는 전임 황제인 도미티아누스의 암살 이후 원로원의 추대로 매우 많은 나이에 황제로 등극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오현제 즉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피우스, 아우렐리우스로 이어지는 새로운 왕조(안토니우스 왕조)가 열리게 되었다. 66세에 황제가 된 네르바는 전임자의 폭정을 수습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다자녀 시민에게 토지 증여, 부유층 자녀를 위한 국가 교육기관을 설치, 우편 비용을 국가 부담, 로마시 곡물 분배제 시행, 낡은 수도시설을 정비 등이다. 군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던 그는 당시 게르마니아 총독으로 군대의 신임이 두터웠던 트라이아누스를 양자로 삼아 그를 후계자로 지명, 군에 관련된 전권을 위임하였다. 단 2년 동안 재위한 그는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사후 이어지는 로마제국의 최전성기의 문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한다.


둘째, 13대 트라야누스(Trajan 98~117)는 장군으로서의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는 황제에 오른 후, 군사 원정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가 황제로 재위할 당시,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그는 빈곤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세금 부담을 경감시켰으며, 공공사업들을 많이 진행했다. 이뿐만 아니라 넓어진 제국의 영토를 모두 제어하기 위해 전국 각지로 뻗어 나가는 도로들을 확대, 정비하였고, 수많은 행정개혁들을 하여 제국의 번영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영토가 넓어지고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회장인 포로 로마노가 좁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기존의 포로 로마노 건너편에 새로운 광장을 축조하고, 현재의 백화점과 같은 공설 시장을 세워 시민들을 입주시키기도 했다.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의 로마인들은 신분과 빈부의 차이를 뛰어넘어 큰 어려움 없이 평화롭게 살았다고 한다. 이렇듯 내정과 원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원로원과 시민들로부터 옵티무스 프린셉스(Optimus Princeps, Best Leader, Best Ruler) 즉 최고 영도자 칭호를 부여받았다고 한다.

약 20년간의 기간에 재위한 그는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끌다 동방에서의 전투를 끝내고 귀환 도중에 병으로 사망했다. 한편 비티니아 속주의 총독이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대처방안을 문의하자 '고발이 있으면 심문을 하고, 배교를 하면 풀어주되, 배교를 하지 않는다면 처형할 것'이라는 행정지시를 내린다. 즉, 법치주의에 따라 그리스도교라는 신흥종교를 다스리라는 것이었는데, 이 시기에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 주교가 로마로 압송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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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14대 하드리아누스(Hadrian 117~138) 황제는 정복 활동 중단, 제국의 안정에 주력하였으며, 550km의 게르마니아 방위선 구축하였다고 한다. 산탄젤로 성이 그의 영묘다. 넷째, 15대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138~161) 황제는 그리스도교 박해를 금지하고 대지진으로 파괴된 그리스, 소아시아, 로도스를 재건하고 안토니누스 장성 구축한다. 다섯째, 16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lius 161~180)는 5현제의 마지막 황제이며 후기 스토아파의 철학자로 『명상록』을 남겼다. 당시 경제적·군사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고 페스트의 유행으로 제국이 피폐하여 그가 죽은 후 로마제국은 쇠퇴하였다. 마르쿠스의 19년간의 황제 자리는 게르만의 민족 대이동의 첫 번째 파고를 막기 위한 피나는 노력으로 점철되었다. 이 노력은 로마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고 그리고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이런 결과로 인해 그는 당시의 로마인들에 의해 '현제'로 인정받았다.

제정시대의 개막을 알린 BC 27년 아우구스투스 황제로부터 오현제가 집권하던 AD 180년까지의 시기가 최고 번영과 평화를 유지한 시기라 하여 Pax Romana(로마의 평화)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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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야누스 포럼(The Forum Of Trajan)의 바실리카 울피아(Basilica Ulpia) 유적지 기둥들]


4) 트라야누스 황제가 세운 포로 트라야노(Foro Triano)는 상당히 넓은 규모였는데, 독재자 무솔리니가 히틀러 앞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하려고 콜로세움에서 비토리아 임마누엘 기념관 옆으로 베네치아 광장에 이르는 넓은 도로(Via Dei Fori Imperiali)를 만들어 양쪽으로 분리해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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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야누스 원주, Trajans Column)


트라야누스 시장(Mercati di Traiano) 터는 고대 로마의 대규모 시장 유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로 추정되며, 여러 층에 상점과 아파트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의 아케이드(Arcade)에 트라야누스 황제의 행정기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시장에서는 주로 기름, 와인, 해산물, 식료품, 채소, 과일 등이 거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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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이 트라얀 시장 터, markets of trajan)


5) 주위 건물에 비해 유달리 하얀색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바실리카 울피아 유적지 기둥들 너머로 보인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베네치아 광장으로 간다. (2017년 7월 18일) (다녀온 곳을 다시 확인하는 투박한 로마사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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