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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정말로 눈?

로마02 / 성모설지전(聖母雪地殿)이라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서

by 로댄힐



로마에 도착한 다음 날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숙소에서 가까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Santa Maria Maggiore)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아이들이 로마에 도착하면 가보고 싶은 곳을 제시 해 주시면 스케줄을 짤 때 우선 반영하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매실 철인 그때 밭일에 빠져 경황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로마는 도시 전체가 고대 유적지이니 딱이 어디를 지정할 수가 없어서 아이들이 안내하는 대로 따르기로 마음을 굳히고는 미리 체크하여 제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조레 대성당에 대해서도 시전 지식 없이 방문하게 되었다.


숙소에서 테르미니 역으로 나와 거기서부터 골목길을 따라 걸어갔다. 로마의 6월은 평균 최저기온이 15.6℃이고 평균 최고기온이 25.6℃라고 하는데 우리가 걷던 지난해 6월 그때 내 느낌으로는 초여름 기온이 아니라 한여름 날씨처럼 더웠다. 걸어서 그럴 것이다. 종이 지도와 스마트 폰의 앱 안내에 따라 도착하니 마조레 대성당 뒤편에 도착한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어서 또 걸으면서 전후좌우를 둘러보기 위해 걷기로 한 걸음이지만, 시간이 제법 걸리니 로마 탐방 시작부터 등허리 땀이 만만치 않게 흐른다.

성당 뒤편에 오니 마침 큰 나무가 있다. 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땀도 식힐 겸 그늘 아래에 섰다. 선 김에 스마트폰을 열어 이 성당에 곤한 자료를 찾으니 이렇게 나온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Santa Maria Maggiore) 대성당. 로마의 4대 바실리카(대성당)의 하나. 일명 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한국식 옛 명칭은 성모설지전(聖母雪地殿). 교황 리베리오(Liberius, 재위: 352-366)가 로마의 에스퀼리노 언덕에 창건, 교황 식스토 3세(재위: 432-440)가 재건. 성당 봉헌 축일은 8월 5일, 그전에는 성모설지전 축일이라 했는데 요새는 성모 대성전 봉헌 축일이라고 함.”


리베리오 교황의 성당 착공에 앞서, 성모 마리아는 로마의 한 귀족에 대한 발현에서 교황이 성당을 세우려고 원하던 에스퀼리노 언덕에, 한 여름철인데 눈이 내리게 해서 장소를 정해 주셨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성당이었다. 식스토 3세의 재건 때(432년) 이 성당은 성모에게 봉헌되었다고 한다.

여름 그것도 초여름도 아닌 한여름인 8월에 눈이 내렸다고라? 그걸 믿거나 말거나 하는 건 각자 나름이지만, 거기다 실증적 사고방식을 들이대어 억지로 그게 아니라고, 그럴 순 없는 일이라고 단정 지어 생각을 굳히지 않고, 그렇 수도 있겠지 하는 약간 열린 마음으로 골목을 돌아 성당 전면으로 갔다.

앞으로 가니 분위기가 영 달랐다. 우선 사람이 아주 많고 또 중무장한 군인들이 여기저기 서서 지키고 있었다. 군용 차량도 몇 대 서 있어 분위기가 살벌(?)하기까지 하다. 총을 들고 두리번거리는 군인들을 지나칠 때 일말의 긴장감도 느껴졌지만, 사람들이 줄을 이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에 그 무리에 휩싸여 우리도 얼떨결에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미사가 집전되고 있었고 미사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성당 안을 거의 채우고 있었다. 또 얼떨결에 우리도 미사에 함께 했다. 그때 6월 18일이 주일(主日)이었으니 중심 미사가 봉헌되는 줄 알았더라면 준비를 해서 갔을 텐데 준비 없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으니 얼떨결의 미사였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나의 경우 복장도 반바지 차림이어서 좀 미안했다. 둘러보니 반바지를 입은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성당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 미사에 함께 하고 있으니 가톨릭 신앙인이라는 공통분모는 있지만 제대에서 봉헌되는 미사에 임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몸동작은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뒤에서 구경하는 관광객 외에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정숙했다.

상당히 긴 시간의 미사 후에도 안에 머무르며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제대로 둘러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 때문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고. 또한 한 건물의 성당 안에 나누어진 공간과 기둥이 너무 많았고 성화나 조각물 성상이 어지럽게 많아서 다 볼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그때 본 것을 집으로 돌아온 후에 자료를 찾아서 역추적하니 내가 그때 본 것은 대개 이런 것이었다.

천장의 금장식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오면서 가져왔던 금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 교황 알렉산드로 6세에게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대개 서양에서는 성인이나 예언자의 무덤 위에 성당을 건립하는데, 이곳 성모설지전의 입구 오른쪽 경당에는 '칠십 인 역 성서'를 번역하는데 일생을 바쳤던 예로니모 성인의 무덤이 있고, 중앙 제대 아래에는 아기 예수가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때 누웠다는 말구유 중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그 앞에는 성모 신심이 각별했던 교황 비오 9세의 동상이 있다. 소성당에서 제단 위를 바라보면 '눈의 전설'이 금색 부조로 새겨져 있다. 성당에서 왼쪽 중간 부분을 보면, '평화의 모후(Ave Regina Pacis)'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평화의 모후'라는 이름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교회를 이끌었던 교황 베네딕도 15세가 성모님을 그렇게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교황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인류를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망명자, 포로, 부상자, 억류자들을 돕기 위해 여러 단체들을 조직하는 등, 그리스도의 박애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성당 뒤에서 앞으로 오자마자 사람들에 휩쓸려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전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밖으로 나와 비로소 둘러본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이 대성당은 아비뇽 교황 시대를 공식적으로 마감하고 교황좌가 로마로 복귀하고서, 라테라노 궁전의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임시 교황청으로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교황청은 지금의 바티칸 시국으로 옮겨갔고.

발코니를 보니 장미색 천이 세로로 길게 내려져 있다. 유심히 보았지만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그때 알 수가 없었다. 숙소로 돌아온 밤에 뉴스를 보니 프란체스코 교황이 이 대성당을 방문하여 밤 미사를 봉헌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낮에 본 발코니 그 장미색 세로 천은 교황 방문을 예고한 거? 보안 문제를 생각하면 동선을 저런 식으로 노출하진 않을 텐데. 아무튼, 교황이 바티칸 발코니에서 강복을 하거나 강론을 할 땐 세로 천이 드리워지는 걸 보고 이런 상상을 해봤다.

리베리오 교활이 건축한 최초의 성당이 있었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의 건물은 교황 식스토 3세(432-440) 시대의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성당이 지어진 이래 지금까지 매년 성당 봉헌 축일인 8월 5일 미사 때 둥근 돔에서 하얀 장미꽃잎들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기적을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이곳은 교황의 대성당으로서 교황이 자주 직접 이용하고 있다. 특히 교황은 매년 성모승천 대축일 날짜인 8월 15일에는 거의 반드시 이곳에서 미사를 집전한다고 한다.


이 성당은 한국 가톨릭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1831년 9월 9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조선교구 설정이 발표된 곳이 바로 이 성당이다. 즉 교황은 이 성당에서 북경교구로부터 조선교구를 분립, 설정한 후 바르톨로메오 브리기에로 신부를 조선 교구장으로 임명하셨다.


15박 16일의 여행을 마친 후 돌아와서 ‘여름 눈’에 관한 자료를 지속해서 찾았다. 찾아보니 많진 않지만 몇 개 건질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히말라야의 여름 눈’이다.


히말라야에서는 여름에 눈이 내린다고 한다. 눈은 겨울에 내리는 것이 우리에겐 상식이다. 그러나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 산맥에서는 그것이 비상식일 수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알프스 산맥 등 서구의 빙하에서는 겨울에 눈이 쌓여 성장하는데 히말라야의 빙하는 여름에 성장한다고 한다. 이른바 ‘하설(夏雪) 형 빙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히말라야에서는 여름에 눈이 내리는 것일까? 그 비밀은 이 지대 일대를 지나가는 계절풍과 그 계절풍을 거대한 산맥이 가로막고 있는 지리적인 조건에 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여름이 되면 인도양에서 수증기를 가득 품은 계절풍이 불어온다. 이 계절풍이 인도양 상공을 지나 히말라야 산맥에 부딪혀 습기를 가득 품은 채 순식간에 식어버려 대량의 눈을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또 참고로 말하면 이 히말라야의 여름 눈과 우리나라의 장마는 형제와 같은 사이라고 한다. 장마전선은 북쪽의 차가운 대륙성 기단, 남쪽의 따뜻한 몬순 기단이라는 두 개의 기단이 부딪치면서 생기는데, 여름이 되면 인도양이 만들어내는 습하고 따뜻한 공기가 동남아시아를 거쳐 우리나라까지 흘러오게 되고, 이 계절풍이 우리나라에 장마전선을 만들어내는 기단의 한 조각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히말라야의 눈도, 우리나라의 장마도 인도양을 부모로 하는 형제와 같은 기상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여름 눈을 뜻하는 하설(夏雪) 산도 충북 제원군 덕산면에 있었다. 하설산은 월악산 국립공원에서 광천(光川)을 사이에 두고 월악(月岳) 산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고 험한 산인데, 산이 높으므로 기온의 수직 변화는 크고, 그런 환경에서 ‘여름에도 눈이 내릴 듯한 차가운 산’이 됨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여름에 눈이 내렸다는 전설을 지닌 산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름 눈과 관련되는 이름이어서 내 눈에 퍼뜩 띄었다.


그것은 깊고 푸른 바닷속의 여름 눈 / 만져보려 하지만, 벌써 사라져 버리네요 /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꿈일런지도 몰라요 / 마치 내 사랑처럼. (lt's summer snow in the deep blue sea / I try to touch, but it fades away / It must be a dream I will never get / Just like my love.) 팝, ‘여름 눈(summer snow)’ 일부다.

07 베네치아 광장을 향하여.JPG

설지전(雪地殿)이라는 다소 특이한 이름의 대성당이 로마에서 첫 방문 지였는지라 그 이름 속의 눈(雪), 8월의 눈이 내 심중에서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사색의 결실은 영 시원찮다. 어릴 때 성당 다니면서 익힌 단어 중의 하나가 설지전, 성모설지전(聖母雪地殿)이었고, 로마의 첫 방문지가 대한민국 시골 작은 성당에서 코흘리개 때 익힌 이름과 맞아떨어지는 곳이어서 더욱 하게 된 눈(雪)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눈은 겨울에도 만지면 녹아버리는데 여름 눈이야 만지면(생각으로라도) 오직 하겠는가. “만져보려 하지만, 벌써 사라지고 만다.(I try to touch, but it fades away!)”


다음 행선지는 베네치아 광장 쪽, 걸어온 것보다 더 많이 걸어야 할 모양이다. 걷기 시작했다.

(2017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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