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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기

파리#4

by 니지

"파리에서 살고 싶었던 적이 있어요"


중학교 때부터 동경했던 파리. 언젠가는 내 눈으로 직접 파리를 보고 느끼고 살아 볼 것이라 다짐했다. 15년 전 막연하게 꿈꿨던 일들이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에펠탑을 깨끗하게 담을 수 있는 시간은 오전 7시 30분입니다"


출발 2주 전, 혼자 여행이기에 내 마음에 쏙 든 사진을 건지기 힘들 것이라 판단해 스냅 촬영을 찍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도 매년 프로필 촬영을 했기에 사진 찍는 것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좋은 카메라와 좋은 풍경에서 나 자신을 제대로 담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설렜다.


사진작가님은 새벽에 가까운 오전 시간에 촬영할 것을 권했다. 커플과 솔로 스냅 촬영을 다년간 했던 사진작가 이기에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할 것이 걱정되지 않았다. 다만 얼굴이 퉁퉁 부어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됐을 뿐.


본격적인 파리의 만남은 아침 7시 30분 에펠탑 앞에서 시작했다. 2시간 동안 높은 굽의 신발을 신고 연신 웃으며 촬영에 임했다. 작가님은 파리와 나를 한 컷이라도 더 담으려 노력해주셨다. 그러던 중 그가 내 나이에 파리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지금 그 나이에 파리에 왔어요. 파리가 좋아서 무작정 왔죠. 그렇게 파리에서 살기 시작한 지 7년째예요"


사진을 전공한 그는 나처럼 파리가 좋았고 생각을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직장 혹은 가족, 사랑하는 이 등 그 무언가를 내려놓고 와야 될 나이, 20대 후반.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파리에 정착했다. 학교도 다니며 사진전을 하기도 했다는 그는 파리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행복하다는 그의 말에 내 속사정도 털어놨다. 파리에서 살고 싶었다는 꿈과 함께. 내 얘기를 듣던 그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파리에 와서 살아보길 권했다. 자신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혹시 진짜 파리에 살고 싶다면 자신이 도와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막연하게 와서 살고 싶었던 파리. 그의 말에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먼저 불어를 배우자' '파리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등의 구체적인 꿈을 꿨다. 그 꿈도 잠시, 그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부족했다. 한 달 반 전 티켓을 예매하고 유럽을 떠난 것 자체가 내 삶에서 가장 큰 도전이고 용기였기에. 회사 하나를 내려 놓는데도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런 내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파리에서 정착할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사실 용기가 없다는 말도 핑계일지 모른다. 도전이, 모험이 두려울 뿐.


그래도 그의 이야기에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이젠 막연한 것이 아닌 조금씩 꿈을 꿔도 좋을 것 같다는. 그래서 파리에서 살아보겠다는 내 마음은 여전하다. "늦었을 때는 없다. 남보다 느린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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