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가 유치원생이 된지
벌써 1년이 다 돼갑니다.
우연히 마주친 꼬마네 반 학부모님이
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혹시 사랑반 엄마들이랑 며칠 뒤에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오실래요?"
엇.
드디어 저에게도 학부모 모임이 생기는 걸까요?
누군가 저에게 번호를 물어보았을 때처럼
가슴이 떨렸습니다.
"네, 좋아요!"라고 말씀드리고
대략적인 날짜를 전해 들었습니다.
꼬마는 당연히 유치원 친구들과 밖에서 만난다고 하니
방방 뛰며 좋아하고,
저는 저대로 학부모로서 데뷔(?) 하는 느낌이라
긴장이 되어 만나기로 한 게 잘한 일인지 몇 번 곱씹었습니다.
"어머님~ 다람이가 친구들이랑
밖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하던데, 맞을까요?"
하원 길에 물어보시는 선생님 말씀에
괜히 머리를 만지며 맞다고 대답합니다.
꼬마는 며칠 전부터
유치원 선생님, 원장님 같은 주변 어른들께
유치원 친구들을 만난다고 자랑을 해온 것 같더라고요.
5살이 끝나는 시점에서야
이런 모임을 시작한 것이 너무 늦었나 싶어
민망스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날 밤에는 뭘 입어야 하나
괜히 옷장을 뒤적거려 봅니다.
키즈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치마나 딱 달라붙는 옷은 옆으로 치워두고
다른 옷들을 살펴봅니다.
손으로 몇 개의 옷들을 밀어보다가
결국 머물게 되는 옷은 티셔츠에 청바지입니다.
약간 긴장되는 마음에
40분이나 일찍 키즈카페에 가봅니다.
꼬마는 키즈카페에 들어오자마자
부리나케 놀겠다며 사라졌습니다.
만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당이 떨어지는 것 같아
일단 바닐라라떼부터 시켜봅니다.
벌컥벌컥 커피를 들이키고 나니
아이들과 엄마들이 한둘씩 키즈카페로 들어옵니다.
전국의 5살 여자아이들은
모두 원피스만 입기로 약속을 했는지
이게 드레스인가, 일상복인가 싶은 옷들을 입고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다람이 엄마입니다."
"안녕하세요, 00 엄마예요."
이름이 사라진 채로
누군가의 엄마로 각자를 소개합니다.
나중에 번호를 묻게 된다면
꼭 이름이 뭐냐고 묻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아이가 같은 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잠시 모이게 되었습니다.
꼬마를 통해서 유치원 이야기를 전해 듣다 보면
혀 짧은 목소리로 말하는 친구 이름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매번 "세은이? 채은이? 누구라고?"
"아니이~~ 세은이라고!"하는 꼬마의 잔소리를 들어왔습니다.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똘망한 눈으로 저를 살피는 세은이를 보고
그제야 이름을 외우게 됩니다.
사진으로 봤던 꼬마의 친구들 중 한 명은
그렇게 저에게 '세은이'가 되었습니다.
다람이는 친구들이랑 노는 게 좋은지
키즈카페의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놀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장난감들을
친구와는 처음 봤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놉니다.
그 어이없는 광경을 멀리서 보다가
그래도 유치원에서 혼자 지내지는 않는 것 같아
걱정되었던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처음 본 엄마들, 아이들과
어색하게 밥도 먹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아이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품속에서 뭔가를 하나둘씩 꺼냅니다.
"자, 여기!"
"우와, 사탕이다!"
"고마워, 말해야지."
"윤서야, 고. 마. 워."
갑자기 간식 나눔과 고마움 전하기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간식을 받아서 고맙기는 한데,
왜 갑자기 주는 건지 당황했습니다.
꼬마와 몸뚱이만 달랑 와서
바닐라라떼나 벌컥 마셨던 터라
"고마워."라고만 말할 뿐입니다.
"엄마, 다람이는 왜 아무것도 안 줘?"
"어머, 얘는 왜 그런 얘기를 해~"
아?
아???
뭔가 약속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꼬마 아이의 솔직한 말과
당황한 꼬마의 어머니 말을 들으며
마치 드레스코드를 미리 연락받지 못한 사람의 심경이 됩니다.
"어, 그, 이모가, 다음에, 꼭 맛있는 거 줄게! 다음에!"
다음에,라는 말을
몇 번이나 우수수 던지고 헤어졌습니다.
분명히 같이 모여서
간식도 먹고 밥도 먹고 왔는데
이상하게 배가 고픕니다.
밥 안 먹었냐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과자랑 주전부리를 더 꺼내 먹었습니다.
쉽지 않네요, 학부모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