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아도 체면이 구겨질 일은 생긴다

by 뇽쌤


작년에 학교에서


학년 부장으로 일했을 때 일이에요.



외부에서 오시는 강사님께서


우리 학년에 오셔서 함께 수업을 하게 되었어요.



같은 학년이 8반이었는데,


저는 학년 부장이니


어떤 날, 어떤 시간에 외부 강사님이 오실 거라고


미리 선생님들께 안내를 해드렸습니다.



그러다 무슨 사정이 생겨서


강사님이 오시는 날짜와 시간이


반별로 바뀌게 되었던 거예요.



'선생님들에게 말씀드려야겠다.'라고


생각만 하고 그걸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주 새카맣게요.



어느 날 아침에 학교에 출근을 했는데


갑자기 어떤 분이 와계시는 게 아니겠어요?



"어? 어디서 오셨어요?"


"저 00강사입니다."



그분의 소개를 듣는 순간


온몸에 털이 삐죽 솟는 느낌이었습니다.



머릿속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아시려나요.



살짝 머리만 허공에 뜨고


손발이 저릿해져요.



"자, 자, 잠깐만요, 잠시만 여기 앉아계세요."라고


겨우겨우 대꾸를 하고


급하게 선생님들 반을 찾아가서


오늘 수업이 있었는데 제가 놓쳤다고


너무너무 죄송하다고 거듭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제가 허옇게 질려 있으니까


손사래를 치며 말씀하셨습니다.



"아유, 괜찮아요, 부장님.


진짜 괜찮으니까 얼른 가보세요."



그렇게 한 분 한 분 찾아가 말씀드리고


제 교실로 돌아왔는데


꼭 마라톤을 다녀온 사람처럼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일을 대충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래도 꼼꼼하게 하겠다고 하지만


실수나 놓치는 것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툭툭 튀어나옵니다.



그럴 때는 어디든지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올해 부장처럼 보직을 맡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요.



좀 더 큰일을 하고 앞에 나서다 보면


그렇게 실수하고 잘못해서


체면이 구겨지는 일들이 더 자주 생기거든요.



괜히 나섰다가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망신을 당하는 것 같았죠.



체면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체면 하나 구겨진다고


뭘 그리 자존심이 상하고 괴로울까요?



어쩌면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실수하고, 또 잘 나오지 못한 결과에 더 속상했는지도 몰라요.



예전에 예능 결혼 지옥에


개그맨 김경진 부부가 나왔었어요.



김경진 씨가 약 7년 전


설정으로 찍었던 몰래카메라로


사람들에게 오해를 샀었다고 해요.



그 뒤로 방송활동을


은연중에 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개그맨이신데 방송활동을 피하니


경제적, 심리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으셨겠죠.



그로 인해 부부끼리도 갈등이 많았는데,


오은영 박사님이 그런 김경진 씨를 지켜보시다가


그런 말씀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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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아도
체면이 구겨질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냥, 내가 선 자리에서 언제나
열심히 최선을 다할 뿐
그 결과를 내가 다 컨트롤 못해요.

저는 면이 안 서고, 체면이 구겨지는,
약간 거칠게 말하면 쪽팔림 생기는 일을
너무 두려워하고, 너무 고통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오은영, MBC 예능 결혼 지옥_김경진 부부 편






제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실수가 없어질 것도 아니겠죠.



좀 더 꼼꼼히 해야겠다,


내가 더 잘해야지, 해도


직장이나 집안의 일들까지 되냐 마냐를


결정할 수는 없더라고요.



그저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할 뿐이죠.



내년에도 물론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체면이 구겨지고 쪽팔린 일들은 계속 생기겠죠.



그럼에도 다음 날들을 잘 살아내고


또 덤덤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요.






오늘 이 마음으로


내년도 부장 원서를 쓰고 왔습니다.



쓸데없이 비장해지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실수에 덤덤해지며


계속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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