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가까워지면서
몸 여기저기가 고장이 났는지
삐그덕 대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 감기 대신에
기침병이라는 말이 왜 돌았는지
알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심한 기침이 보름이 넘도록 계속 되고 있어요.
자다가 기침으로 깨다가
다시 선잠에 들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잠을 잘 못자서 그런지
다른 곳이 아파져서
어제는 그냥 방문한 병원에서
가벼운 수술도 받고 왔어요.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수술은 수술이라
몸이 완전한 컨디션은 아니네요.
아마 쉴 때가 된 것을
몸도 알고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닌가 싶어요.
덕분에 새해가 되어서 했던 다짐들이나
운동 계획은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자기 좀 돌봐달라는 몸의 신호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아픈 걸 잘 참는 편입니다.
고3 때는 공부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사랑니 발치를 한꺼번에 3개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는 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사랑니 발치는 통증이나 출혈 때문에
보통 한 개씩 하더라고요.
이번에 수술할 때 마취는 했지만
그렇게 아픈 건 잘 못 느꼈어요.
물론 마취 주사는 따끔하긴 했습니다.
어제 의사 선생님이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무통주사를 달아주신다고 했는데
괜찮다고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수술하고 집에 돌아와서
꼬마 공부를 봐주기도 했어요.
그정도 아픈 거는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설거지도 하고 꼬마를 재우고 나서
이렇게 저렇게 떠오르는 할 일도 하려는데
딱 거기서 멈춰버렸어요.
그냥 다 내려두고 잠을 잤습니다.
제가 또 통제욕구가 엄청나게 올라오는구나 싶었거든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굳이 뭘 어떻게 해야 한다를
몰아붙이고 강요하는 편은 아니지만,
스스로에게는 하겠다고 정한 것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을 오차없이 수행하기를 바라더라고요.
수술을 받았고 아프면 쉬어야 하는데,
"아냐, 이 정도 아픈 건 참을 수 있어.
괜찮아. 해야 할 건 해야지."하며
일상이랑 똑같이 살려고 하고 있더라고요,.
[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이라는 책을 쓰신
나종호 교수님이 유퀴즈에 나와서 했던 말이 있어요.
이제는 우리가 조금은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도 관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항상 괜찮을 수는 없고 괜찮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로 괜찮은 것.
항상 괜찮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괜찮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괜찮은 것이죠.
만약에 나랑 똑같이
가벼운 수술일지라도 수술한 사람이 있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지금 하던 거 내려놓고 들어가서 좀 누워있어요.
핸드폰도 좀 보고, 아무 생각 안해도 되니까
누워서 졸리면 자고 그래요."
생판 모르는 남에게도
그렇게 얘기하고 말리겠다 싶어서
그냥 들어가서 쭉 잤습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줄 첫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어야 하는데,
자주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몸이 먼저 멈춰 세운 이 시간에야
다시 떠올리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