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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뇽쌤 Oct 27. 2023

그래, 선생님 휴직 잘했다니까


우리 집 꼬마는 말이 늦다.



30개월이 다 되는 동안 


혼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 응, 엄마, 아빠 정도로


몇 개 안 되어서


사실 마음 앓이를 꽤나 했었다.



말을 잘 하는 다른 아이를 보고 왔을 때


꼬마야, 너는 왜 말을 못 하니?


라고 다그치고는 


내 스스로가 너무 못나서 혼자서 울기도 했다.



나는 글자를 못 쓰는 아이에게


한글은 잘 가르치고


덧셈 뺄셈도 잘 가르칠 수 있는데,


아예 말 못 하는 아기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법은 몰랐다.



꼬마는 어릴 때부터 


반응이 별로 없었는데


내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꼬마는 다른 곳을 보거나


자기 할 일만 해서


그게 그렇게 애가 탔다.



대답도 잘 안 하고


잘 웃지도 않고


나를 잘 보지도 않았다.



나 때문인가.


내가 말이 너무 없었나.


엄마인 내가 너무 바빠서 그런가.


내가 좀 더 말을 걸어줄 걸 그랬나.


같이 있는 동안 집안일을 너무 많이 했을까.



절망스러움이 가득하던 새벽녘에


잠들지 못하고 


혼자서 자폐 진단 영상을 


찾아본 적도 많았다.



우리 반에서 학생으로 만났던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굳게 다지기도 했었다.



어떤 밤에는 괜찮을 거라며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가


어떤 밤에는 마음이 문드러져서 


잠들지 못하는 것이 반복됐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꼬마가 돌이 될 때까지만


휴직을 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우리의 육아휴직은 길어져만 갔다.



꼬마의 말이 늦는 것은


그 결정에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래서 올해 내가 휴직하면서


솔직히 정말 많은 것을 포기했다.



무급휴직을 받아들였고,


한창 쌓아나가고 있었던 커리어도 중단했다.



개인적으로 


교사로서 이런저런 커리어를 쌓아나가며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해나갈 수 있는


정말 중요한 시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래봤자 공무원인데 


그게 별거냐,라고 할 수 있지만...



나한테는 별거다. 


나한테는 소중한 거였다.



근데 그냥 다 내려놓고


꼬마랑 올해 지내왔었다.



책도 많이 읽어주고


놀이도 많이 해주려고 하고


하원하고 꼬마랑 떠돌아다니며


꼬마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해주고.



여전히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고


대답이 없는 꼬마에 대해서


짝꿍과 나는 


가끔 얘기하기도 하다가,


어쩔 때는 부러 얘기하지 않기도 했다.



가끔가다 꼬마의 말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모든 이야기들이


...으로 끝났다.



서로에게 


두려움과 절망스러움을 


전달하고 싶지 않아서


다물린 입 사이에 


이어진 점들이


우리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말을 걸어주고


기다려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반년이 지났고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한 달 전부터 꼬마는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꼬마는 두 단어를 이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너무 감격스러워서,


나는 그날을 달력에 적어두었다.



그동안 꽁꽁 숨겨왔던 보따리를


조금씩 풀어놓는 것처럼


꼬마는 제 표현들을 하기 시작했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말 못 하던 꼬마는 


귀여운 애완동물 같았는데,


이제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들떠있던 나는


내 상황을 잘 아는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꼬마가 두 단어를 이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달했다.



그러자 같이 있던 지인분이


나에게 



그래, 선생님. 휴직 잘했다니까.



라고 얘기해 주셨다.



이상하게


순간 울컥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울 상황이 아닌데


어색하게 울고 싶지 않아서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제야 


내가 꼬마의 두 단어에


얼마나 안심하고 있었는지,


꼬마가 이렇게 계속 말을 못 하면 어쩌나 


내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알았다.



휴직을 선택하며 느꼈던 열등감도 괜찮았다.



가끔 잘 차려입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고 


부럽다고 느꼈던 것도 괜찮았다.



교사인 친구들의 학교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맥없이 혼자 생각했던 것도 괜찮았다.




그런 마음들은 다 지나갈 거니까.



갈 곳을 정해두지 않고


1시간 동안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도,


놀이터 바닥에 주저 앉아서


온갖 열매들을 수집하는 것도,


지금 이순간에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꼬마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3년 동안 가르쳐주니


이제는 꼬마가 짧은 혀로 살앙한다고 말해줘서,


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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