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들을 계획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가치가 있건, 없건,
해야하는 것 이외의
하고 싶은 일이나 이슈의 순위를 세우고
하나씩 체크해나가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 부분은 항상 정도가 중요한데,
어쩔 때는 계획 수행이 어그러진다면
엉클어진 것들에 욱하기도 하고,
그것이 임계치를 넘어가면
갑자기 모든 계획을 폭파시키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 때문이다.
에이 망했어.
다 때려치워.
이런 심경이랄까.
어른이 되고 난 이후에는
누구도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강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스트레스 받는
희한한 과정을 거친다.
그럴 때 한 번씩 떠올리는 그림과 글이 있다.
우리나라의 원조 멀티테이너라고 할 수 있는
김창완 아저씨의 오래된 편지이다.
라디오를 오랫동안 진행하시고 있는 김창완 아저씨께서
예전에 사연을 보내신 사연자님께 보낸 편지이다.
조금 찌그러지든,
어딘가가 끊어지든,
어찌 되었든 동그라미다.
저걸 네모라고 할 거야,
세모라고 할 거야?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일 뿐이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도 안심이 되는 말이다.
그래서 종종 스트레스를 받아서
라면이 먹고 싶어지면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라면이 먹고 싶어진다.)
동그라미들을 연이어 그린다.
어떤 동그라미들은
꽤나 그럴듯한 모습을 가지기도,
어떤 동그라미들은
형편없이 찌그러진 모습이기도 하다.
내 동그라미들은
못난 것도,
그럴듯한 것도 있겠지만,
매일매일 그려질 거다.
결과가 어떻든
우리의 하루하루도
매일매일 그려질 거다.
완벽한 하루를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헐겁더라도
하루하루를 꾸준히,
빠짐없이 그리는
완벽주의자로 살고 싶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럴듯한 동그라미보다
형편없이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에
더 마음이 가고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그날은 무슨 일이 있었니?
혹시 힘들지는 않았니?
물어봐 주고 싶어서.
잘 그려진 날들은
그날의 뿌듯함으로
있었는지도 모르게
슥- 지나가고야 말겠지만,
끊어지거나
울퉁불퉁했던 날들은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거다.
그런 날에는
좀 다독여주고
내일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꼭 말해준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그린 동그라미들이
고운 모래알들이 되어
소복이 쌓인 모습도 보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