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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뇽쌤 Nov 06. 2023

숨결을 찾아서


© bady, 출처 Unsplash


어린 꼬마는 아직까진 

잘 때 곁에 부모가 있어줘야 한다.



짝꿍과 나는

우리끼리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터라,

꼬마가 신생아였을 때부터 방을 따로 썼다.



그래도 꼬마가 어리니

잘 때까지는 곁에 부모 중 한 사람이 

같이 누워서 잠들기를 기다려준다.



어린아이들은 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잠드는 것이 

마치 죽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얘기가 있다.



꼬마가 잠을 안 자니 답답하고 울컥하다가도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꼬마는 잠들고 일어나서 

부모 없이 홀로 있는 자신을 보고

무서워서 엉엉 울지 않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다.



그래서 잠드는 꼬마 곁에서 

꼬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들기를 기다려준다.



침대에서 인형을 껴안고 뒤척이기도 하고

갑자기 꺄하하 웃기도 하고

(이게 젤 무서움, 잠이 진짜 안 온다는 뜻이라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기도 한다.



신기한 건

정말로 잠들기 직전이 되면

예외 없이

제 보드라운 볼살을 내 얼굴 근처에

붙이고 자는 것이다.



커튼을 꼼꼼히 쳐서

서로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그 칠흑 속에서

꼬마는 제 부모의 숨결을 찾아온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다가도

결국에는 내 곁에 붙어서 

살점 한 조각이라도,

숨결 한 조각이라도 나눠 가지려 한다.



내 코 끝 가까이 제 얼굴을 바짝 붙여서야 

잠드는 꼬마의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왜 하필이면,

사람은 이렇게 연약하게 태어났을까?



사람은 태어나서 만 5세까지는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만 3세는 되어야

열매라도 따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서 

혼자 자라는 동물들이 정말 많다.



상어가 그렇고

거북이가 그러하다.



심지어 사마귀는 태어나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먹이로 인식하기 때문에

부모나 형제나 얼른 헤어져 주는 것이 

서로를 위하는 길이다.



사람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없으면

단 3일도 삶을 이어나갈 수 없다.



이 말도 안 되는 삶은

지금까지 말도 안 되게 길게 이어져왔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아이가 부모에게

건네는 순도 100%의 믿음인 것 같다.



꼬마의 눈을 보고 있다가

진심으로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부모인 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볼 때다.



자신이 넘어졌을 때 

부모인 내가 잡아줄 것이라는 것,

자신이 배가 고플 때 

부모인 내가 먹을 것을 줄 것이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나를 절대로 

아프거나  할 사람이 아니야,

라는 무한한 믿음을

눈으로, 피부로 확인하게 될 때면

가끔 그게 참 황당하기도 하다.



너는 날 뭘 보고 믿는 걸까.



야, 사실 엄마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야.
그래도 네가 날 그렇게 믿으니까
좀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

칠흑 같은 밤이다.



꼬마가 없었다면

이런 믿음을 어디에서 

느낄 수 있었을까?



세상에서 누구보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 부모도 아니고,

내 배우자도 아니고,

만 2세의 꼬마다.



그리고 사실 누구보다

꼬마의 곁에 붙어서

살점 한 조각이라도

숨결 한 조각이라도

나눠 가지고 싶은 사람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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