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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뇽쌤 Nov 10. 2023

어린 애들과 지낼 때 제일 중요한 건


© profwicks, 출처 Unsplash

지금 생각해 보니까

어린애들과 지낼 때 제일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정도를 

명확하게 아는 것 같다.


좋을 때는 항상 좋다.


근데 좋지 않을 때가 더 중요한 것 같더라.


꼬마들은 아직 어리다 보니

정도를 잘 모르는데

장난도 심하게 치고

규칙도 어디까지 괜찮게 적용되는지

한 번씩 확인하려고 든다.


예를 들면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하면

많은 아이들은 잘 지키려고 한다.


© austin_pacheco, 출처 Unsplash


그러나 보란 듯이 뛰어보며 

선생님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는 아이도 있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보며

이건 괜찮은지 확인하는 아이도 있고,

잠깐 뛰면 괜찮은지 살피는 아이도 있다.


단호하게 얘기하건대,

이건 그 애가 완전 나쁜 아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끊임없이 한계를 

확인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어진 선이 어디까지인지,

내 행동은 어디까지 허용이 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고

자신의 영향력 범위를 넓히고 싶어 한다.


그냥 본성이다.


이런 성향이 강한 아이들은 

좀 도전적이기도 하고,

자유도에 대한 갈망이나 규칙을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재정립하고자 하는 욕망이 크다.


근데 학교는 그런 아이들에게

네가 하고 싶은 건 알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단다,라고

알려줘야 하다 보니 제제가 많다.


그러니 평소에는 

위험해서 그러는 것이니, 하지 마라얘기하다가

어느 날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참아줄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거나,

꼬마가 나를 간 보는 게 느껴져서 울컥할 때가 있다.

(당연히 애도 인간이니 간을 본다.

사람에 대해서 견적(평가)을 낸단 얘기다.

어릴수록 살기 위해서 더 살핀다.

오히려 크면 퇴화되는 듯...)


이렇게 

그때 중요한 건

내가 불쾌하다고 확 느끼는 지점이 어디인지,

그리고 불쾌해지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야지

오히려 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교사 초임 시절에

애들한테 진심으로 화가 난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얘들은 정말 어린애들인데,

키가 작은 편인 나에게도 허리 반 밖에 안 오는데

왜 이 애들한테 화가 날까?



어린애들은 원래 말을 안 듣는데,

나는 왜 화가 나고 있지?

나는 왜 욱하고 있지?


아이들을 때리지도

심한 말을 하고 그랬다는 건 아니지만

(큰 소리는 좀 냈다...)

아이들이랑 있으면서 순간 울컥하는 나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었다.


철이 너무 없던 시절에는

욱하는 게 심하던 아버지를 닮아서 그랬을까, 하며

괜히 아부지 탓을 하기도 했다.


애들이 말을 안 들어서 그런가, 하며

괜히 애들 탓도 해봤다.


그런데 돌아보니

내 감정을 잘 몰랐던 게 문제였다.


아이들은 원래 그렇고,

오히려 그 순간에 

그러지 마라, 

선생님도 네가 자꾸 그러면 그건 기분 나쁘다,라고 

그냥 얘기해 주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한다.


문제는 나에게 있던 것이었다.


지금 내가 불쾌해지고 있는 중이다, 

또는 애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힘들어지고 있다,라는 걸

전혀 몰랐다.


그러니까 괜찮지도 않으면서 괜찮다고 말하고,

적당하지 않은데 적당하게 넘어가고,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역치점을 확 넘어가 버려서

감정적으로 번아웃이 오고 울컥했었다.


아이들을 상대로 진심으로 화가 나기도 했다.


또 제대로 얘기도 안 했으면서

내가 잘해줬는데 

애들은 나한테 왜 이럴까...라는 

말을 하게 되었었다.


아이들도 나도

교실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기에 

서로 조율해나가는 상황들이 필요하다.


심지어 나는 가르쳐 줘야 하는 입장이니

조율하는 과정을 실제로 실행해 줘야 하고 

보여주며 가르쳐 줬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으로

괜찮아, 괜찮아, 하며 일관하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애먼 애들한테 욱하고 있더라.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명확하게 알고,

그 범위를 넘어오는 것 같으면

안 돼, 안 돼, 이건 안 되는 거야, 하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잘 지낼 수 있다.


애들을 오래 가르치고

내 자식도 키우다 보니

오히려 나 스스로를

창피할 정도로 투명하게 알게 되는 것 같다.




근데,

이게 애들이랑 있을 때만 중요할까?


내 허용 범위를 모르는 채로

얼마나 어영부영한 세월을 보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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