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커피는 한 봉, 물은 컵 가득히.
저희 아버지의 단골 커피 주문이에요.
흔히 5-60년 대생 아버지들이 그렇듯,
아버지는 믹스커피를 식후에 한 잔씩 꼭 드셨어요.
근데 달랑 믹스커피 한 봉만 타면서
물을 뭘 그렇게 가득 붓는지.
저는 그게 참 이해가 안 갔어요.
우리 아빤 정말 특이한 취향을 가졌어,라고
생각하고 말았었죠.
그러다 서른이 넘고,
얼마 전에야 저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다가
아버지의 특이한 커피 취향을 얘기했었는데,
어머니께서 어깨를 으쓱하면서 얘기해 주셨어요.
너네 아빠가 커피를 금방 마시는 게 아까워서 그런 거야.
딱 맞게 타면 후루룩 다 마셔버리니까.
아빠가 없이 살아서 그러지,
넌 아빠를 아직도 몰라?
이 말을 듣고 골이 띵-했어요.
어머니 말씀을 들으니
아버지의 특이한 행동들이
하나씩 이해가 가더라고요.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라면을 끓일 때도
국수사리를 꼭 한가득 넣으셨었어요.
가족이 여섯이었는데
꼭 라면은 네 개만 넣고
국수사리는 두 움큼씩 집어서 끓이셨죠.
라면에 국수사리를 잔뜩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라면 국물이 밀가루를 푹 머금어서
진득진득해집니다.
어릴 때는 그 진득해진 라면 국물에서 나는
밀가루 냄새가 너무 싫었거든요.
“그냥 라면을 하나 넣으면 되잖아.”
제가 퉁명스럽게 얘기해도
아버지는 고집스럽게 라면에
국수사리를 한 움큼 넣으셨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라면 한 개를 더 넣는 게 아쉬웠고,
그러면서도 식구들 모두
배불리게 먹이고 싶으셨던 마음에
그러셨던 것 같아요.
가족들도 그랬는데,
본인을 위해서 드시는 커피는
오죽 아깝고 아쉬웠을까요?
그러니 커피도 그냥 하나 더 타서 마시면 되는걸,
굳이 물을 더 타서 밍밍한 커피를 드셨던 것이겠죠.
어른이 되고 나서 또 저에게 자식이 생기고 나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아요.
그러다가도 또 중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에서 여섯 형제들과 함께 자랐던
내 아버지는 어떤 인생을 사셨던 걸까,
덧없이 생각하게 되는 날이 있어요.
제가 아버지와 같은 인생을 살지 않았으니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겠죠.
사실은요,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골이 띵- 했던 건
이유가 있었어요.
제가 집에서 캡슐 커피로 라떼를 만들어 마실 때마다
우유를 지나치게 많이 붓거든요.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냐고
짝꿍이 타박을 해도
몰래라도 우유를 더 부었어요.
집으로 사 온 테이크 아웃 커피에
쪼르르 우유를 더 붓기도 하고요.
밍밍하지만 좀 아깝기도 하고
더 오래 마실 수 있어서 그랬죠.
제가 생각하는,
저의 구깃구깃한 행동이라서
아무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누군가와 참 닮아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