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를 위해서 이름 등을 바꾸었습니다.
종종 교장선생님이
교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간식을 쏘실 때가 있다.
그날도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그날은 교장선생님이
피자를 쏘셨다.
작은 학교라 1-2학년 선생님들이
네다섯 모여 피자를 먹었다.
피자를 먹기 시작했는데,
집에 가기 싫어해서
학교 끝나고 놀이터에서 놀다가는
우리 반 민이가 생각났다.
형편이 넉넉치 못해서
피자 구경하기 힘들 민이었다.
다 같이 먹는 것이라서
조용히 있다가
선생님들께서 피자를 다 안 드시길래
민이를 위한 불고기 피자를 세 쪽 챙겼다.
민이를 부르려고 놀이터에 갔더니
2학년 형님도 함께 있었다.
그 2학년 형님은
작년에 우리 옆 반이었는데,
얘도 어려운 가정 아이인 걸 알고 있었다.
어, 하나 더 가져올 걸...
뭐, 한 개 반 씩
나눠 먹이면 되는 거지, 생각했다.
"피자 먹을래?" 물으니,
아이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점심시간에 손 씻고 오라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몰래 물만 묻히고 오더니
이번엔 아무지게 비누로 손도 씻고 왔다.
꼬마 둘이 서로 마주 보게 하고
피자를 먹으라고 했다.
마실 게 필요할 것 같아서
교무실 냉장고에서
오렌지 쥬스 한 병을 꺼내왔다.
쪼르륵 종이컵에 담아
반씩 나눠주고
업무를 보려고
아이들과 떨어져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음 주 수업 계획 때문에
인상을 쓰고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꼬마 둘이서 두런두런 얘기하는 게 들렸다.
주변에 있는 공부방에 같이 다니고 있는데
거기 숙제가 많다는 얘기.
공부방에서 집에 가는 길이
저녁에는 좀 어둡다는 얘기.
요즘에는 핸드폰 게임 중에서
뭐가 재밌다는 얘기.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2학년 형님이 민이에게 말했다.
- 어제 우리 아빠가 화가 나서 엄마 때렸다.
마우스를 잡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 아빠가 얘기하는데 엄마가 대답을 안 했다고 뒤에서 리모컨을 던졌어.
- 우리 아빠도 저번에 엄마 때렸어. 그래서 엄마가 아빠한테 욕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가 '본 것들'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나는
몇 번을 눈을 깜빡였다.
- 너희는 안 맞았어?
차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거대한 교사 책상에서 나와서 겨우 물은 한 마디.
아이들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 나에게
다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사실은 고개를 끄덕여준지도 모른다.
그동안 아이들이 겪을 수도 있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불행이
내 앞에 적나라하게 아이들의 시선으로 펼쳐졌다.
생각만 해왔던 것과
아이들의 입으로 전해진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불행을 가릴 줄도 몰랐다.
갑작스럽게 목격하게 된
아이들의 비극에 어쩔 줄 몰라하는 것도 나뿐이었고,
그것에 망설이는 것도 나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도 너희들은 안 맞아서 다행이야, 라고 해야 하는 거야?
아이들 너머로
또 다른 불행을 감당하고 있을
이 아이들의 엄마를 불쌍히 여겨야 하는 거야?
감히 누가 누굴 동정하고 있어.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동정은 도울 수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기계처럼
그래도 부모님은 너희를 사랑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나는 예전에 꼭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던 그 어른처럼
그럴 때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동생이랑 같이 있으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피자를 마저 먹었으며
오렌지 쥬스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다.
비겁하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다.
그 문장을 몇 번씩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이들을 배웅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 이후 민이의 행색을 한 번 더 보고,
드러난 팔이나 다리를 더 살피고,
간식거리를 몇 번 더 챙겨주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마지막 줄에 넣었던 안전문구처럼
여상스럽게 가정폭력 신고전화 1366을
적어두었을 뿐이었다.
이 기억은 내 안에
여전히 날카롭게 남아 있다.
종종 수면 위로 떠올라
날카롭게 벼려진 문장으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넌 비겁한 사람이다.
지금도 그때의 나는 어떻게 해야 했는지
쉽게 답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