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평범한 날의 비겁한 기억

by 뇽쌤


꼬마를 위해서 이름 등을 바꾸었습니다.







종종 교장선생님이


교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간식을 쏘실 때가 있다.



그날도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그날은 교장선생님이


피자를 쏘셨다.



작은 학교라 1-2학년 선생님들이


네다섯 모여 피자를 먹었다.



피자를 먹기 시작했는데,


집에 가기 싫어해서


학교 끝나고 놀이터에서 놀다가는


우리 반 민이가 생각났다.



형편이 넉넉치 못해서


피자 구경하기 힘들 민이었다.



다 같이 먹는 것이라서


조용히 있다가


선생님들께서 피자를 다 안 드시길래


민이를 위한 불고기 피자를 세 쪽 챙겼다.





photo-1448301566816-a036b4240d58.jpg?type=w773



© lee_hisu, 출처 Unsplash





민이를 부르려고 놀이터에 갔더니


2학년 형님도 함께 있었다.



그 2학년 형님은


작년에 우리 옆 반이었는데,


얘도 어려운 가정 아이인 걸 알고 있었다.



어, 하나 더 가져올 걸...



뭐, 한 개 반 씩


나눠 먹이면 되는 거지, 생각했다.



"피자 먹을래?" 물으니,


아이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점심시간에 손 씻고 오라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몰래 물만 묻히고 오더니


이번엔 아무지게 비누로 손도 씻고 왔다.



꼬마 둘이 서로 마주 보게 하고


피자를 먹으라고 했다.



마실 게 필요할 것 같아서


교무실 냉장고에서


오렌지 쥬스 한 병을 꺼내왔다.



쪼르륵 종이컵에 담아


반씩 나눠주고


업무를 보려고


아이들과 떨어져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음 주 수업 계획 때문에


인상을 쓰고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꼬마 둘이서 두런두런 얘기하는 게 들렸다.



주변에 있는 공부방에 같이 다니고 있는데


거기 숙제가 많다는 얘기.



공부방에서 집에 가는 길이


저녁에는 좀 어둡다는 얘기.



요즘에는 핸드폰 게임 중에서


뭐가 재밌다는 얘기.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2학년 형님이 민이에게 말했다.



- 어제 우리 아빠가 화가 나서 엄마 때렸다.



마우스를 잡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 아빠가 얘기하는데 엄마가 대답을 안 했다고 뒤에서 리모컨을 던졌어.


- 우리 아빠도 저번에 엄마 때렸어. 그래서 엄마가 아빠한테 욕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가 '본 것들'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나는


몇 번을 눈을 깜빡였다.



- 너희는 안 맞았어?



차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거대한 교사 책상에서 나와서 겨우 물은 한 마디.



아이들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 나에게


다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사실은 고개를 끄덕여준지도 모른다.



그동안 아이들이 겪을 수도 있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불행이


내 앞에 적나라하게 아이들의 시선으로 펼쳐졌다.



생각만 해왔던 것과


아이들의 입으로 전해진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불행을 가릴 줄도 몰랐다.



갑작스럽게 목격하게 된


아이들의 비극에 어쩔 줄 몰라하는 것도 나뿐이었고,


그것에 망설이는 것도 나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도 너희들은 안 맞아서 다행이야, 라고 해야 하는 거야?



아이들 너머로


또 다른 불행을 감당하고 있을


이 아이들의 엄마를 불쌍히 여겨야 하는 거야?



감히 누가 누굴 동정하고 있어.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동정은 도울 수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기계처럼


그래도 부모님은 너희를 사랑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나는 예전에 꼭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던 그 어른처럼


그럴 때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동생이랑 같이 있으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피자를 마저 먹었으며


오렌지 쥬스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다.



비겁하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다.



그 문장을 몇 번씩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이들을 배웅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 이후 민이의 행색을 한 번 더 보고,


드러난 팔이나 다리를 더 살피고,


간식거리를 몇 번 더 챙겨주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마지막 줄에 넣었던 안전문구처럼


여상스럽게 가정폭력 신고전화 1366을


적어두었을 뿐이었다.



이 기억은 내 안에


여전히 날카롭게 남아 있다.



종종 수면 위로 떠올라


날카롭게 벼려진 문장으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넌 비겁한 사람이다.



지금도 그때의 나는 어떻게 해야 했는지


쉽게 답할 수가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이는 가정과 함께 교실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