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매해 가을마다
마음앓이를 한 번씩 하는 건 알고 있었다.
너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단단한 사람인데,
가을을 탄다는 게 신기했다.
며칠 전에 노래를 듣고 있는데
너는 그런 말을 했다.
"가을에는 울적한 노래는 안 들었으면 좋겠어."
아, 그 말이 신호였던 것 같다.
너의 가을이 시작되었다는 신호 말이다.
너에게도 그런 틈이 있구나.
생각해 보면 나는 너의 틈을 가끔씩 발견했던 것 같다.
우리 집 어린이를 재우다 같이 잠든 너를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할 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매일 하던 운동을
어느 날부터인가 슬그머니 안 하기 시작했을 때.
너의 30대에 함께 했던 스포츠클럽에
흥미를 잃어가는 게 보일 때.
이제 막 40이 된 너는
같은 일을 하는 게
지겨워지고 있다고 했다.
더 이상 어떤 것에도 설레지 않다고 했다.
옛날에 느꼈던 그 설렘을
더 이상 느낄 수가 없어서
이게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
그 생각에 서글퍼진다고 했다.
20대나 지금이나 마음은 똑같은데
나이만 먹고 있어
슬프다는 얘기를 했다.
사실 내가 스무 살에 보았던 너와
지금의 너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넌 아직도 젊은걸.'이라고 얘기해 봤지만
너는 내 말을 가벼운 위로로 흘려들었다.
내가 아직 너의 나이가 되지 못해
다 이해할 수 없는 지도 모른다.
너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지만
나는 네가 한 번도 한 적 없는 슬프다는 말을 하니
어쩔 줄을 몰랐다.
뭐라도 도울까 싶어
집안일을 도맡았는데,
너는 집안 여기저기에서 뚱하게 앉아서
티비를 봤다가 핸드폰을 봤다가 한다.
너를 다 이해하지 못해서
너에게 도움이 될만한 말은 하지 못한다.
그냥 내 이야기를 그냥 써서
네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네가 제일 잘 알겠지만
나는 시간 하나하나를 쓰임새 있게 쓰려는 사람이다.
그날 계획했던 걸 못했다고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책하는 나를
옆에서 보고 있는 너니까 말이다.
그런 내가 요즘 애쓰고 있는 건
내 인생에 낭만을 한 방울이라도 넣어보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뭘 하지 않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도 말이다.
낭만은 좋아하는 사람과 낭비한 시간들이라고 한다.
남들이 보기에,
심지어 내가 보기에도 쓸데없는 시간일지라도,
좋아하는 사람과 '지금' 함께 보낸다면
나는 그것을 '낭만'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지나간 것들은 언제나 아쉽고,
마음 한켠이 저린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한하기에 더 빛나고,
영원하지 않기에 더욱 마음을 붙잡게 되는 순간들은
지금도 너의 곁에 있다.
네가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마주 봐줬으면 좋겠다.
나는 너의 20대와 30대, 40대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다.
30대의 너는 20대의 너보다 멋졌다.
나는 그래서 너랑
한 번 살아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40대의 너는 분명 30대의 너보다
더 좋은 사람이다.
자기 전에 매일 30분은
깜깜한 방에서 아빠와 속살거리다가 자는 딸을 보며
너와 같은 아빠를 가진 딸이 부러웠으니까.
설렘은 새로움에서만 피어나는 게 아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보고,
어이없는 웃음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오래가는 설렘 아닐까.
우리는 예전처럼 모든 것에 벅차게 설레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다정하게 살아갈 수 있다.
계절이 바뀌어도, 마음이 무뎌져도
너는 여전히 누군가의 이유이고,
누군가의 설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