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시작
강남으로 이직했다는 글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현생에 치여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회사는 잠실로 이사를 갔습니다. 덕분에 저의 출퇴근 시간은 왕복 4시간을 넘어 4시간 30분이 되어버렸습니다. 7년 넘게 지켜온 루틴이었지만, 차가 막히면 왕복 5시간이 되어버리는 출퇴근길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 다니다 느낀 점은 '이렇게 살다간 내가 조져지겠다'였습니다.
독립을 결심한 후, 틈날 때마다 네이버 부동산에서 매물을 검색했습니다. 화장실 갈 때도, 퇴근할 때도. 사실 혼자 살 집을 찾는 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회사가 강남에 있을 때, 그때도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서 낙성대 쪽으로 매물을 보러 다녔습니다. 퇴근이 늦어서 평일에 보는 건 무리였기에 주말에도 서울로 출근해 부동산 원정을 다녔습니다. 거의 50군데 넘게 방을 구경했지만 제 눈이 높은 건지 영 시원치 않는 곳들뿐이었습니다.그중 기억에 남는 곳이 2군데가 있었는데 계약 기간이 안 맞거나, 이미 계약된 매물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돌아다니다 보니 이 지역과는 인연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매물 보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저는 장마가 한창일 때 잠실에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평일 퇴근 후에도 보고, 주말에도 봤습니다. 특히나 주말 아침잠은 너무 달콤해서 '평일엔 길 위에서 개고생을 했으니, 나는 이걸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감성적으로 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조지지 않으면, 내가 조져질 것'이란 이성의 목소리도 꽤 큰 편이었습니다. 어른들이 말하길,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이라고 했더랬죠. 여기선 이성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잠실에선 한 10곳 정도의 매물을 봤습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이상형에 가까울 만큼 완벽한 집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놓치기 아까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계약금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세입자 얼굴과 신원을 보고 계약하고 싶다는 집주인 말에 중개사분이 가계약금을 보관하게 되었고, 심지어 계약서 쓰기 전날에 집주인과 현 세입자 간의 이슈가 발생했다고 하여 결국 계약금을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해 놓치기 아까운 집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집에 들어갔어도 언젠가는 집주인 때문에 골치 아픈 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에 찾은 집입니다. 당일도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한 채 인천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내가 서울에 살 수 있기나 한 것인지, 이런 기약 없는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런지 등 슬슬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잠실에서 강남으로 넘어와 잠시 마음을 다잡을 겸 역사 내 벤치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동산 어플을 켰습니다. 마치 영화처럼, 운명처럼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나주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요. (만약 제가 작가라면 이때 쯤에 집을 등장시킬 것 같거든요)
마침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었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매물을 보러 갔습니다. 그동안 봤던 곳 중에서 가장 깔끔했기에 바로 가계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 이건 계약해야 해' 같은 운명적인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거면 됐다'가 좀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때문에 제가 원하던 부분을 몇 가지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창문 뷰, 화장실 창문 등)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이 집에서의 6번째 밤입니다. 도저히 못 해먹겠는 시간들을 이제는 어떻게 해먹을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