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선언한 세계여행. 3주 만에 번아웃이 왔다.

by 김지오

여행 25일차, 번아웃이 왔다.

더 이상 여행이 기대되지 않았다. 예쁜 풍경을 구경하고, 재밌는 액티비티를 하는 것도 질렸다. 그 다음 행선지에 대해 찾아볼 생각을 하면 피곤했다. “하기 싫다”는 무력감과 짜증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시간이 갈 수록 내가 이 여행을 왜 시작했는지조차 모르겠더라.


그래서 여행을 멈췄다. 이후에 예정해놨던 모든 계획을 취소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고생했던 저가 여행과 호스텔 생활도 멈췄다. 그저 온전히 쉴 수 있도록 2주 동안 머물 아파트를 예약했다.

돈을 아끼지 않고 내게 모든 것을 해줬다. 장을 봐와서 매끼 한식을 해먹었다. 밖에 나가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생각했다. “나는 지금 무슨 상태지?” “뭘 원하지?”


내 감정을 파헤치다보니 어렴풋이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1. 끊임없는 이동과 결정의 연속은 나를 진에 빠지게 했다.

2 ~ 3일에 한 번씩 새로운 도시로 이동했다. 13kg의 배낭을 메고, 3 ~ 7시간 동안 버스를 탔다. 또한 끊임없는 이동은 끊임없는 결정을 동반했다. 어디에서 잘지, 밥은 어떻게 먹을지, 그 곳에서 뭘 할지, 내 예산과 맞는지 등..

…질려버렸다.


2. 저가형 배낭 여행은 나와 안 맞는다.

처음엔 저가형 배낭여행이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거친 환경 속에서 물질의 소중함을 깨닫고, 더 강해진 나를 기대했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필수적인 내게 호스텔 생활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예산을 맞추기 위해 먹고 싶은 것과 사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건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


3. 나는 여행보다 일을 할 때 자아 실현을 한다.

한달간 여행하며 놀다 보니, 노는 것도 질리기 시작했다. 일에 대한 욕망이 매우 커졌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내가 가장 몰입하던 순간은 일이나 공부를 할 때였다. 그 몰입의 감각이 그리워졌다. 요새는 카페에서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다. 엉켜있는 내 생각뭉치를 차근히 풀어낼 때, 나는 몰입한다.


4. 나는 또 남들이 하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여행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남미의 모든 나라를 찍는 국민 여행 루트를 따르고 있었다. 이 나라에 갔으면 A도시, B도시를 가야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니 현타가 오지.. 여행을 시작한 나의 본질적인 이유에 더욱 집중해야 했다.

…내 마음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저 남들 하는 대로 진로를 정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어서, 누구보다 그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정말 한 치도 방심하면 안 된다.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나는 정말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게 맞는가? 생각 없이 남들 하는 대로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끊임없이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존 계획을 모두 지우고 내 마음에 집중했다.

원하는 것이 2가지 있었다.

1.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보기

세계여행을 시작한 동기 중 하나인 장엄한 자연 경관을 보고 싶다.

2. 아마존에서 야생동물 보호 봉사하기

동물 보호는 내가 삶을 바치고 싶은 분야 중 하나이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에서 직접 봉사를 해보며,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이것을 하는 동안은 이것에만 집중할 것이다. 잠깐이라도 한국에서처럼 치열하게 달려보고 싶다.


2주간 번아웃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즐거웠던 순간들 보다 오히려 더 깊게 나를 파헤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앞으로도 여행하며 헤매는 순간이 올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그저 여행의 초점이 내 마음에 맞춰져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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