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북 선반 하나를 구입했다. 근처에 책이 있어야 더 자주 손이 가고, 책이 내 눈 근처에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화요일 배송이 되니 그 선반 위에 올릴 책을 선별하드 책장을 펼쳐 밑줄 그었던 부분을 다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역시 단순하다.
보여야 자주 읽고 만지면 결국 읽게 된다.
엄마와 자주 커피를 마신다.
수영은 엄마 덕분에 시작했다. 뭐라도 꾸준히 할 운동이 필요하다는 엄마는 결국 바쁘다며 고집부리던 나를 이겼다. 내가 아침 수영 수업 후 나갈 때 엄마가 들어오는데 그 짧은 시간에 많은 분들과 인사를 나눈다.
모두 엄마와 함께 수영을 하는 분들이다.
기본 20년은 넘게 수영을 하신 분들이니 이 지역
수영선수들은 다 모인 포스다.
나보다 연배가 높은 모든 분들은 사실 나에게는 엄마 같은 분들이다.
아프면 걱정해 주시고 웃기만 해도 예쁘다 칭찬해 주고 인사하면 등 두드리시며 받아주시고 힘내라고 주먹을 불끈 올려주신다. 안 보이면 궁금해해 주시고, 보이면 반가워해주시고, 좋은 일 있으면 함께 웃어주시는 분들이니.
정말 모두 엄마같이 느껴진다.
엄마가 되고, 40이 넘어가면서 생각의 결이 달라지기도 한다.
내 중심이 가족 중심이 된다거나, 내 모든 것인 줄 알았던 것이 또 다른 것으로 옮겨가거나,
나만 보듬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그렇다.
나 힘든 것, 나 바쁜 것만 생각하고 고민하느라 누군가의 삶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보려는 노력 자체를 안 했던 것 같다.
내가 즐거우면 그걸로 즐거운 거고, 내가 슬프면 세상이 모두 슬프게 느껴지는 자아도취 인생.
엄마가 되어 내 하루가 때로 곁가지로 밀려나기도 하고
푸르게 커가는 아이들과 비례해 이제 중년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구나 새삼 떨어진 면역에 슬프기도 한 날들을 경험하며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얼마나 모두 애쓴 날들이었는지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 은유는 책에서 한 사람의 애씀으로 한 사람이 편안한 관계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애씀으로 인해 나 역시 더 편하게 공부하고 일하고 자라고 잠자고 살아왔다.
그 애씀의 가운데 '아빠'와 '엄마' 부모라는 이름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나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잘나고 빛나도록 뒤에서 사정없이 받쳐주고 애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그때는 잘 보이지 않았다.
굳이 누군가를 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냥 심플하게 내 앞에 서있는 누구나, 그 사람 인생에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바라봐 주면 된다.
그렇다면 감사한 마음이 한 번 더 일고, 안아주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한 번 더 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