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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가 적기일까.

아이 둘을 유치원에 보내고 한 달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보고, 글도 써서 저장해 두고,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방향을 잡으면서 아주 정적인 시간을 보냈어.


뭐 특별히 달라지고 특별히 발전된 모습은 아닐지 모르지만

고요함을 만끽하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책 냄새를 마음껏 맡았던 시간.


겉으로 남은 건 없을지 몰라도 머리에 마음에 뭔가 작은 하나라도 남아있지 않겠나 싶어.




그리고 그중에 틈틈이 얼굴 자주 못 보던 친구들도 몇 만났어.

그래 봐야 두 번이 고만.

아진이 한번. 오늘 대학 친구 예원이 한번.


내 주변애들은 다 징해.. 분명히 자기애가 강한 내 친구들이었는데 지금은 너도나도 최우선이 '아이'들이야.

그래서 약속도 쉽게 잡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자주 못 보고 연락만으로 사랑을 이어오는 친구들이야.

(애 둘 끼고 자유롭게 못 나가던 내가 가장 문제이긴 하지만..)


친구를 만나면 서로 아이들 키우느라 상황이 뻔하니 오전 시간 일찍이 만나서 우리애들 하원 시간 전까지 만나는 거지 뭐.

10시쯔음 만나 1시 40분 전에는 헤어지니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인데 또 일 년에 한번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친구 만나 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더라고.

그래서 만나는 그 시간 최대한 더 집중할 수 있는 장점도 있더라.


그 소중한 시간 중에 오고 가는 시간 좀 줄여보자고 내 친구님이 이른 시간 손수 차를 몰고 우리 동네까지 오셨다는 거 아니겠어. 눈물이 나게..

문을 연 커피숍이 보이길래 무작정 근처 작은 커피집으로 들어가서 커피 한잔씩 시켜놓고 얘기를 했어.

애들 키우는 얘기, 소소한 일상들, 대학 얘기, 그리고 우리의 꿈.



아이들이 너무 어릴 때는 무작정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만 몰두를 하다가

아이들이 조금 큰 시점이 되면 엄마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해.

'아이가 좀 컸네 나도 뭔가를 시작해야 하나.

뭐부터 해야 하는 거지. 이렇게 계속 있다가 정말 집순이로 눌러앉는 거 아닐까..'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해.


그래서 알바몬도 들어가 보고 잡코리아도 들어가 보고..

끊어진 경력으로 뭔가 할 수 있는 거리가 있을까.. 확인해보고 싶은 맘에 기웃거리게 되는 거 아니겠어..



그러다가 여전히 진상 부리고 여전히 나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오열하는 내 아이 앞에서 마음을 놓지.

'다행이다.. 아직은 내가 있을 곳이 여기는구나.'

진~짜 다행이지 뭐 정말.

 지금 맘 편히 일할 수 있는 곳도 없고, 그렇다고 좋~다고 두 팔 벌려 날 받아줄 곳도 없는 게 잡 코리아 현실이잖아.


난 서윤이 7살, 아윤이 5살이 되면 어딘가에서 다시 일 하고 있을 줄 알았어.

그쯤 되면 애들 다 키워놨겠다.. 싶었거든.


^^하하하하하하하하하우헤에헤헤헤헤헤우게게레게렐 그냥 좀 웃을게.


난 아직 애들 간식 만들고, 아침에 지겹도록 깨우고 지겹도록 읽어주고 지겹도록 놀아주고 지겹도록 치우고.. 지겹도록 재워..

무한반복 육아 릴레이를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어.


이 정도 되면 어느 정도 깔끔하게 육아라는 게 마무리될 줄 알았더만 여전히 고대로~라니.

달라진 건 한 달 전 얻은 오전 시간의 자유가 전부라니.

이건 뭐 내가 상상하던 거와의 괴리감이 너무 커.

분명 많이 큰 것 같은데.. 또 여전히 돌봐야 될게 많은 아이 사람이더라고..


그래서 뭐 이제는 마음을 고쳐먹었지.


오전 시간만큼은 어떻게든 잘 활용하자.

그래서 그 오전 시간은 나한테 고3 수험생의 시간이야.


집에 있으면 티도 안 나는데  자꾸 청소를 해..

정리를 하고 주방을 기웃거리고 안방 침대에 눈이 가.

그래서 애들 데려다줄 때 무조건 가방 메고 나가. 억지스럽게 나가.

그 시간 허투루 쓸까 봐 겁이 나서.



엄마들에게 내 이름 석자를 되찾을 수 있는 적기는 도대체 언제인 걸까?





한글은 언제 시작해야 하고, 영어는 언제 시작해야 하고..

다들 내놓는 답들은 다르지만  사람마다 그 성향에 맞는 속도로 결국은 다 해낸다는 걸 우리는 알잖아.


사실 적기라고 정해진 것이 모든 아이들에게 짜인 틀처럼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잖아.

엄마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

'엄마로서의 적기'가 아니라 '사람마다의 적기'인 거지.



난 큰 아이 7살이 되면 나의 적기가 찾아올 줄 알았지만 그 적기를 준비하는 준비과정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시간을 좀 보낼 생각이야.

한 단계 낮게 생각하면서 만족하면 불만도 걱정도 한결 줄어드는 것처럼

언젠가는 분명히 맞이한 나의 적기를 위해서 오전 몇 시간일지언정 열심히 투자한다고 생각하지 뭐.




엄마들은 뻔히 아는 엄마들의 하루에서 나의 잊힌 이름 석자를 찾으려고 부르짖어봤자..

애 키우는 지금은 애들만 더 미워 보여.

집안 꼴에 더 화가 나고 쌓여있는 설거지를 다 깨부수어버리고 싶...(표현이 좀 과했지? 가끔 내가 느끼는 감정이라.. 말이지..)


어떤 부분에서든 성급함은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 같아.

육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냥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받아들이다 보면 그 사이사이 나도 모르게 작은 순간들이 찾아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순간,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순간..


미칠 것 같고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치열하게 매달려서 보낸 그 집념의 육아 덕에 나도 모르던 잠재력을 발견할 수도 있고 시간의 소중함을 되새기면서 뭔가를 준비할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기도 하더라고.


돌아가도, 조금 늦어도 목적지에 도착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난 육아를 하는 중이거든..

그 마음가짐 덕에 남과 조금 다른 하루가 불안하지 않고, 매일 놀기만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조급하지 않는지도 몰라.


내 '적기'도 그렇게 육아처럼 마음을 좀 고쳐먹으려고.

조금 시간이 걸려도, 돌아가도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는 결국 도착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천천히 한번 가보려고 해.



인생이란 거창한 뭔가가 아니라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보낸 시간들의 합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꾸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부여해 줘야 되는 것 같아.

그 마음 하나면 누구든 적기를 맞이할 충분한 준비가 됐다고 생각해.


모든 사람에게는 다 '적기'가 있다고 하더라 다행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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