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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 준다는 것.

기다려 준다는 것.


가만 보자..

내가 기다린 게 몇 년째가 되어가냐면..
서윤이에게 욕심을 좀 버리고, 조급함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보겠노라고 스스로 결심을 한 게 뻘짓 3년 정도 한 후, 4살 즈음이었거든.

그러니 3년 차야 이제.
완벽하게 아이의 속도 그대로 ' 기다려 주는 ' 3년 차 엄마.


좁은 집에 엘리베이터도 없거든 우리 집은.
헌데 그놈의 책은 그득하게 키우고 싶어서 
다른 거 다 포기하고 '책' 한길만 택해서 이어온 길이야. 그래서 다른 가구 다 포기하고 책장을 들이기 위해 고군분투 해더랬지.



책장 주문하나 넣으면 들고 올라오는 
기사 아저씨 눈치부터 보게 되거든..
욕 안 할 수가 없는 좁은 계단이고 3층인지라 주문 넣고 기사 아저씨에게 문을 열어주면..

"아저씨 죄송해요~아구.." 자연스럽게 튀어나와.


그래서 친절해 뵈는 기사 아저씨가 배송해주는 책장으로 주야장천 주문해서

한 아저씨에게만 내리 사죄했었더랬지.



그 눈치를 보면서..

아직도 벽면 어디 남은 데가 있냐고 되묻는 남편의 뼈 있는 한마디를 애써 묵인하며..

줄자 가지고 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넣어줄 공간이 있나 머리 굴리고 다니면서..

넓은 집 북유럽풍 인테리어로 꾸몄다며 카스에 사진 처 올리는 친구들의 넓은 거실을 애써 외면하며..


이 공간, 좁지만 너희에겐 최고의 공간으로 만들어 주겠노라고..

나는 그렇게 하루 수십 번 다짐했었어.


나에게 있어 최고의 공간은 '도서관' 같은 아늑한 공간이었고

책 좋아하는 아이에게 충분한 책을 내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

책이 있는 공간에서 나도 아이도 함께 공존하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고.


그렇게 많은 노력과 고민이 함께한 과정이었기 때문에

사실,

아이가 책을 안 읽고 날뛰며 놀기만 하면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기어올라오는 거야..

그래서 은근히 종용도 하고 말이지.


그러면 애들이 말 잘 듣냐고.. 안 읽잖아.

내킬 때 읽지..


그래서 그 욕심마저 다 내려놓고

책은 이리 널려 있으니 너희들이 당길 때 가져다가 읽거라. 마음을 먹었더니 슬금슬금 또 읽기 시작해.


어떻게 그리 내려놓음을 귀신같이 아는지

에라이.. 될 때로 돼라 '내려놓으면' 달려들고,

집착하면 떨어져 나가는 게 아이들과 우리 엄마들의 숙명인가 봐.


실컷 읽었는지 요새는 잘 거들떠 안 보고 놀기만 해.

봄이잖아.

나가야지..

겨울 내리 웅녀 엄마 곁에서 새끼 웅녀 두 마리 노릇 단디 했으니

봄에는 나가 뛰어야지 암..


그래서 나도 책을 근처에 두는 노력도 안 하고

자기 전에 들고 오는 책 몇 권만 읽어주고 그냥 자라 해.

내일 또 놀으려면 자야지. 그래야 에너지를 충전하지.


자기 전에 오랜만에 책을 다발로 들고 들어갔어 서윤이가.

책 한권만 읽고 있으라니까 알았다고 혼자 잘 읽고 있더라고.














글자는 잘 읽고 잘 쓰는데

저리 책을 보고 있으면 당최 한 권을 다 읽는 건지.

사진만 보는 건지.. 그림만 보는 건지...

아직도 잘 몰라 나는.


그냥 지 하고 싶은 거 알아서 잘 찾아 하겠지......

걱정을 안 하려고.




기다린다는 것.

처음에 멋 모를때는

아이가 스스로 한글을 읽고, 쓰고, 책 읽는 것을 기다리겠다고 생각했었거든.

그 기다림이 아이를 위한 엄청난 배려라고 착각했었어.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아니더라고.

기다려주는 목표가 '내 아이 뭐 잘하나..'확인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은 아니더라고.

그리고 기다림은 내 아이를 위한 배려가 아니더라고.

내 맘 편하려고  결정한 선택지 중 하나였더라고.



그냥 당연히,

당연히 기다려주는 거였어.




아이 인생의 주인은 '아이' 잖아.

그 아이가 즐기는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당연히 기다려 줘야 하는 거더라구.



안기다려주면 어쩔거여...

그래봤자 지가 안내키면 안할텐데.

억지로 애가 해도 그게 엄마로서 맘 편하겠냐고..

나이차 엄청 나는 엄마와 애가 어이없게 실랑이 밖에 더하겠냐고..



나의 강압 때문에 억지로 뭔가를 하게되면 ..

엄마가 아이에게 '무서운 선생님'으로 비추어 지는 순간

아이의 마음에는 원망과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 같았어.


나에대한 불만과 원망에 대한 감정이

훗날 불쑥 나에게 내뱉어지게 될까봐 난 사실 그게 두려웠거든.

그래서 '억지로', '무조건' 이 두가지를 발악하며 피했는지도 모르겠어.


난 아이에게 '선생님'이 아닌 '엄마'이고 싶어 평생.

친한 친구이고 싶고.

아이가 '원할때', 무엇인가 '즐겁게 할 수 있을 때

그 순간 앞에서 끌어주는 엄마가 아닌, 아닌 뒤에서 조금 밀어줄 수 있는 그런 조력자가 되고 싶거든 난.

그래서 아이가 날 어려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늘도 징하게 시끄럽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래 지은아 너 잘 참는다..잘 기다려주고 있다' 수십번 기특해 하던 하루였거든.


그런데 어쩌

자기를 기다리는게 도대체 왜 어려운지 반문하는 중인 아이들일지도 모르겠어.

'이렇게 재미있는데 도대체 왜?'


..

완벽한 KO 는 이런게 아닐까 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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