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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심의 나날들

[1.변심의 나날들]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단어로 단단히 옭아맨다. 책임감 있는 아이라는 칭찬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도 묵묵히 해내고, 또 칭찬을 받았다. 지은이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니까.

"하기 싫어요."라는 말을 하지 못했을 뿐이고 " 저는 안 할래요"라는 말을 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보다는 소심한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아직까지 날 따라다닌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어느 순간 본능적으로 견뎌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때론 애잔한 마음이 든다. '쯧쯧. 여전히 묵묵하기만 한 답답한 인간아.'

그 싫던 책임감은 때론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내가 시작한 일 마무리하겠다는 집념도 생기게 하고,

아이들의 부모로서 이겨낼 수 있는 힘도 강하게 한다. 날 힘들게 하지만 불쑥 날 응원하며 격려하는 이중적인 단어들과 숱한 시간들.

변심은 나에게 일상이다. 오늘 하루만 하더라도 난 얼마나 변덕스러운 인간이었는가.



하루 단 몇 장이라도 책을 읽고 몇 자라도 글을 써 저장을 한다. 스스로 정한 나의 작은 루틴은 때론 날 행복하게 만들지만 날 힘들게 하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읽고 쓰는 것에 집착을 하는가.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확하고 명쾌하게 정리하기 어렵다. 행복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추상적이고, 자아 성장을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뜬구름 같은 대답이 영 마뜩잖다. 때론 행복하지만 때론 던져버리고 싶고, 때론 그 행위 자체가 날 진흙 같은 구덩이에서 날 올라오게 만든다. 읽고 싶어서 읽기도 하지만 억지스러운 마음으로 겨우겨우 졸린 눈을 비비며 책을 펴는 내 모습도 있으니 이 또한 일관성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변덕스러운 마음이 요동친다. 묵묵히 해내야 하는 일들을 하면서도 늘 변덕이 판을 친다.  이런 크고 작은 변심의 나날들이 어쩔 수 없는 나의 일상이다. 때로는 사치를, 때로는 절약을. 때로는 집밥이 생명줄인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주방 탈출을 꿈꾼다. 계획적이 날들을 선망하지만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람 솔솔 불어오는 외딴곳에서 대자로 누워있는 나를 상상하며 그 생각만으로도 행복에 빠진다.



늘 좋아 보이던 풍경이 지루하기 그지없는 날들과.

한없이 뭐든 내어주고 싶던 누군가에 대한 애정이 가차 없이 식어버릴 때.

편안하던 공간이 숨 막히고 날 불편하게 만들 때.

그렇게 좋아하던 무언가가 죽기보다 싫어질 때.

반대로 죽기보다 싫던 일이 어느 순간 좋아질 때.



난 변심의 나날들 한가운데 서있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르겠다. 나란 사람이 어떻게 나아갈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누구와 인연을 맺게 될지, 나의 앞날이 어떨지 도통 모르겠다. 이 안정적이지 못한 어수선함이 미숙하고 모자란 나의 깜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지금부터는 나의 변심의 나날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이다. 애잔하면 애잔 하대로, 황당하면 황당한 대로, 가소로우면 가소로운 대로.. 그냥 있는 그대로 힘을 빼고 바라보려고 한다.

어쩌면 관찰의 시간 덕에 나의 하루가 변심에서 일심으로 귀결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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