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바리부인


검정미니스커트에 달라붙는 검정 민소매 목 폴라티, 그리고 베이지색 스트랩 샌들을 신은 사진 속 엄마 나이는 고작 24살이었다. 사진을 볼 때마다 엄마의 패션센스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한 여름에 목을 다 감싼 폴라 티셔츠를 입는 엄마의 열정은 감탄할만했다. 사진 속 엄마의 가방에 살짝 삐져나온 책 귀퉁이가 눈에 띄었다.

“ 엄마도 은근 멋 많이 냈어. 어떤 책이었을까 이건?”

“ 어디 보자.. 보바리부인이었나... 기억 못 하지 뭐.”

외출할 때 무조건 책 한 권을 가방에 넣는 엄마의 습관은 나에게도 연결된 습관이다. 어떤 책을 넣을까 고민하다가 정작 지갑을 빼놓고 와 당황하기도 하고, 전화기를 두고 온 적도 있다.

엄마는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 보바리부인이라고 했다. 가끔 일반상식 퀴즈라도 내듯 책 제목을 말하면 아빠와 나, 동생은 바로 빠르게 작가를 대답해야 했다. 만약 우물쭈물거리면 “십 년을 떠들어댔는데 이리 엄마한테 관심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즉 보바리부인에 관련된 것만큼은 온 가족이 대답할 수 있었다.

“보바리 - ”

“ 귀스타브 플로베르!”

단 세 글자만 들어도 작가를 말할 수 있도록 엄마는 끊임없이 책과, 주인공과 작가에 대해 알려주었다. 마치 독백을 하는 배우처럼.

보바리 부인은 계절학기 교양수업에서 선택한 여성학 수업 관련 도서였다. 보바리부인의 주인공 엠마의 행동을 분석하며 여성의 관점으로 정리하는 수업이 난 이해하기 힘들었다. “뭘 이해해. 한 여자의 불륜은 결국 파국을 맞이했다.”

이렇게 심플한걸. 과제를 하며 의견을 나눌 때 나같이 생각하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교수님은 선택 이면에 있는 한 여자의 일생과 마음속 공허함, 시대적 의미의 정절, 소비의 형태, 한 인간의 허영심, 사랑의 방식 등 다양한 부분으로 나눠 엠마를 분석해 보라고 했고 꽤 재미있게 과제를 준비한 기억이 있다. 그 과제를 준비하며 엄마랑 많은 얘기를 나눴다.

엄마의 결혼은 행복한가. 엄마도 이런 사랑을 꿈꾼 적이 있는가. 공허한 마음은 꼭 이성으로 대체되어야 하나 등 모녀지간의 대화는 꽤 뜨겁고 깊었다. 엄마는 엠마가 결혼을 하고 자신의 집을 꾸미거나,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치장하는 모습, 남편의 가족들과 관계에서 역시 애쓰는 모습을 예로 들며 엠마가 마치 본인 같다고 말했다.

“ 이거 사실 바탕이라 하지 않았어 엄마?”

“ 100프로 허구인 소설이 있나? 경험이 다 밑바닥 어딘가에 깔려 있는 거지.”

“ 엄마도 소설 한 번 써봐. 경험치가 많잖아.”

“ 엄마가 소설 쓰면 기본 10권 넘는 대장정이 시작된다.”

“ 등장인물에 난 빼줘라 엄마.”

“ 말 오지게 안 듣는 딸 한 명 무조건 넣어줘야지.”

“ 자기주장 세고 세련된 여성상으로 날 넣어주겠어? 나이는 지금이 딱 좋아 26!”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양평 읍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은행에 취업했다. 엄마가 졸업과 동시에 자주 가던 읍내 서점 옆 은행에 지원서를 낼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엄마는 생계를 위해서 선택한 일이라고 했지만 꼭 그 이유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졸업하기 전까지 책에 살고 책에 죽던 엄마를 알던 친구들은 엄마가 분명 책과 관련된 일을 할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득 책과 관련된 일들을 뭐가 있을까 노트에 끄적거렸다. 소설가. 평론가. 시인. 작.. 가. 편집자. 출판업. 서점주인...

엄청 디테일하게 책과 관련된 일들을 나열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쉽게 떠오르지 않았고 책과 관련된 직업은 그냥 작가라는 단어로 귀결 됐다. 생각보다 연결고리가 단조롭게 마무리된 것은 온전히 나의 배경지식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나열한 단어들 중에 엄마의 꿈과 가장 근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글이라고는 얇은 수첩에 쓰는 짧은 일기나 좋아하는 책 필사 정도가 전부인 엄마였지만 나는 엄마 얼굴을 볼 때면 불현듯 ‘소설가’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했다. 아마 엄마 품에는 늘 소설책이 들려 있었다는 사람들의 말 때문에 받은 영향인 것 같기도 하다. 스벅. 카톡으로 받은 음료 쿠폰이 휴대폰 안에 10개는 넘었다. 마감이 임박한 두 장의 쿠폰은 엄마와 사용했다. 오늘 써야지 하고 늘 밀려버린 쿠폰들은 아직 넉넉한 기한으로 날 기다려준다.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자는 엄마 말에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가방을 내려놨다.

“ 엄마는 라테지? 나 기한 하나만 확인하고 엄마.”

리포트 기한은 여유롭게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이렌오더로 주문을 넣고 기한을 보니 아직 마무리할 시간이 남아있었다. 시간이 좀 있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는 걸 보면 인간의 뇌는 참 간사하고 단순하다.

‘여자의 꿈, 엄마의 꿈’이라는 주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진부하다. 완벽히 시대착오적이다.

“주제 너무 별로이지 않아?”

“너 페미니?”

엄마의 질문에 커피를 뿜을 뻔했다.

“엄마도 페미라는 말을 써? 너무 웃긴다. 그냥 좀 질문 자체가 올드하잖아.”

“그 진부한 질문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더 문제인거지. 계속 파고들어야지 그럼. 해결이 될 때까지. 기미가 보일 때까지.”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엄마의 꿈은? 내가 볼 때 엄만 딱 정치가인데 말이야. 아주 좋아 잔다르크 같기도 하고.”

엄마는 너희들이 잘 되면 그게 전부지... 같은 오글거리는 대답만은 아니길 바라며 엄말 바라봤고 엄마는 대답했다. 엄마의 글을 쓰고 싶다고..

엄마는 어디서든 글을 썼다. 틈날 때마다 메모를 하고 글을 쓰지만 경제적으로 연결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였을까? 엄마의 글 쓰는 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누군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뭐든 도전해 봐 – 라며 무성의한 답을 하던 나는 남들과 다르게 꽤나 쿨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인정보다는 무관심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했다고 시인한다. 엄마는 글보다는 주방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는 사실 자체가 꽤나 오래 부끄러웠다.

“ 요새도 쓰지 않아? 뭐 써 엄마?”

“ 뭐 정해진 게 있나 끄적거리는 거지. 메모 수준이야.”

“ 그러지 말고 정말 진득하니 완성해 보지?”

“ 아서라. 그럴 시간이 있나.”

한없이 여유로운 엄마의 하루가 바쁘다는 의미는 세탁된 빨래를 각 맞춰 접고, 날씨가 좋으면 가장 먼저 이불을 털어 걸어놓으며, 미리 저녁 밑반찬을 만들거나 장을 보고, 먼지 한 톨 없을 것 같은 집을 쓸고 닦고 매만지는 거였다. 일해도 티도 안 나는 집안일에 목숨 걸지 마 엄마.라고 말하면 엄마는 매번 눈을 흘기며 “ 누군가 정신없이 움직여야 평타를 치고 유지되는 게 집안일이거든요. 애송이 씨.”라고 말했다.

학교 앞 카페나 도서관에서 혼자만의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나는 엄마도 이러한 공간을 많이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할 때나 중요한 일을 마무리해야 할 때 가장 편한 집은 가장 방해되는 공간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눈앞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완벽하게 차단해야 온전히 공부든, 글이든, 업무든 할 수 있다. 엄마가 글을 쓰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문득 글이 완성될 때까지만 해도 엄마와 집을 멀어지게 만들고 싶었다.

“ 아빠 오늘 일찍 온대. 저녁 차려야지.”

“ 아빤 손이 없나 발이 없나. 배고프면 뭐 하나 사 먹어도 되고 시켜도 되지 뭐 허구 한 날 밥밥밥.”

“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너도 엄마 밥 먹고 이리 컸다. 까불긴. 너 할 일 없으면 손 씻고 나물이나 같이 좀 다듬어.”

“ 아- 나 싫어. 오늘 네일 받았단 말이야. ”

“ 아 그러니? 그래그래.”

‘뭐 이렇게 시시하게 수긍하는 거야. 더 미안하게.’ 나는 너무 싱싱해 양이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던 시금치 다발을 외면하고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리고 엄마가 준비한 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맛있게도 (쳐) 먹었다.

“ 봐 맛있지. 시켜 먹는 거랑 비교가 되니.”

사실이었다. 하지만

“ 나물이 거기서 다 거기지.”

라고 말하며 맛있게도 우걱거렸다. 엄마는 내 밥그릇에 밥을 조금 더 올려놓았고 나는 고사리와 시금치, 취나물과 호박볶음을 야무지게 더 올렸다. 그리고 첫 끼를 먹는 사람처럼 다시 한번 맛있게 (쳐) 먹었다.

“ 엄마 나 참기름 더 넣을래.”

“ 그래 여기 있다. 참기름 이번 주에 짜온 거라 맛이 다를 거야. 너무 고소하지?”

“.. 아 정말.. 겁나 맛있다.”

늘 이런 식이다. 말과 행동은 한결같이 다르고, 생각은 말을 따라가다 결국 엄마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이제 세상이 변했다고 여기저기서 부르짖고 있는데 여전히 남자가 해야 할 일과 여자가 해야 할 일을 이분법적으로 나눠버리거나, 만날 때마다 나이를 확인하며 일정한 결혼 적정기가 있다고 떠드는 친척들, 또는 엄마를 보며 나는 가끔 한숨을 쉬게 된다. 엄마가 조용히 앉아 뭘 쓰면 다들 “가계부 써?”라고 여전히 물어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상황 자체가 슬프기도 하다. 세상은 변했다고 야무진 척 얘기하지만 여전히 여자라는 종족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생각하는 내 모습을 봐도 가끔 한숨이 나온다. 너 역시 말 뿐이라고.

많은 이들의 생각이 딱 거기까지 한정되어 있다는 것과, 누군가의 노력이 돈이 되지 않는다면 슬쩍 짓밟아도 된다는 듯한 경시의 뉘앙스는 늘 뼈아프게 아리고 슬픈 법이다.

진정 그들은 그 실수를 모르는 것일까. 여기서 경자고모를 소개해야겠다. 경자고모는 자신이 여성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비하하는 이상한 습관이 있는 사람이다. 경자고모가 첫째 딸을 낳았을 때만 해도 그렇다. 다들 축하한다고 덕담을 주고받을 때 첫째로 딸 낳은 년은 축하받을 자격도 없다며 자신을 깎아내리는가 하면 이미 딸을 낳은 엄마에게 언니 기를 내가 받았는지 집안에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어 어쩌냐는 막말을 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문제는 악의는 없었다는 그 말들에 여럿이 속을 앓다가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는 거였다. 오해의 불씨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는 것을 본인만이 모른다는 것은 본인에게는 다행일지 몰라도 여러 사람이 속 터지는 일이었다.

나는 왜 명절 때 친가 식구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가. 왜 굳이 그 명절에 알바를 구하면서까지 시골에 함께 내려가지 않으려고 애썼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 경자고모는 가장 큰 원인 제공자다. 여대에 입학한 나를 향해 계집애로 태어나 굳이 징글징글한 여대까지 간다며 말할 때 엄마는 경자고모와 작정하고 대거리를 했다.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엄마를 향해 경자고모는 눈썹에 힘을 바짝 주며 말했다.

“ 딸 셋으로 뭐 그리 어깨에 힘이 들어갈 일이 있을까!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딸 낳은 주제에 저리 소리를 지르는 것도 용기다 용기.”

“ 내가 악의를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닌데 말이야.. ”

늘 뭔가 말하기 전, 즉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내기 전 장판을 깔 듯 내뱉는 고모의 표정은 늘 한결같았다. 어릴 때 넘어져 찢어진 눈썹 위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한 고모의 오른쪽 눈썹은 조금 특이하다. 이마에서 오른쪽 눈썹 머리를 살짝 잡아당기는 듯한 모습인데 심각한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그 눈썹모양이 쇠고집스러운 고모의 성격을 더 부각하곤 한다. 고모의 말들은 악의 없는 말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 날카로웠다. 늘 그랬다. 고모 입 밖으로 나오는 자음 모음을 하나하나 다 긁어모아 수챗구멍에 버려버리고 싶었다. 고모도 같이. 엄마를 말리며 말 섞을 필요 없다고 집안을 나왔을 때 경자고모는 기어이 울 오빠 돈으로 호위호식하며 잘 먹고사는 주제에 감사할 줄 모른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날 아빠는 경자고모의 뺨을 후려쳤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 엄마는 인생이 소설인지라 소설로 쓰면 토지 버금갈 거라고 말했고 나는 디테일하게 어떤 장르의 소설이냐고 물었다. 분위기라도 바꿔볼 심산이었다. 엄마는 스릴러라고 대답했고 나는 추리소설이네.라고 말했다. 말을 하면서 곁눈질로 운전 중인 아빠의 얼굴을 살폈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가늠이 가지 않는 아빠의 표정이 그날 너무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엄마가 나와 내 동생을 키울 때는 남편이 나가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서 조신하게 가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여성의 모습이라고 말하던 때였다. 주변을 보면 일을 하는 엄마는 ‘독한 여자’라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고, 아이를 불 꺼진 집으로 혼자 들어가게 만드는 것은 모질고 냉정한 모성이라 떠들어대기도 했다. 모두 일하지 않은 엄마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신빙성이 떨어지기는 했다. 결국 일과 엄마노릇 두 마리의 토끼를 완벽히 잘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 분명했다는 사실 하나가 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수다의 안주가 된 것이다. 엄마가 집에 있던 나는 친구(송희)와 함께 하교했다. 가장 시간이 여유로운 친구였다. 나는 함께 하교하는 날이면 문방구에서 그 친구에게 아폴로라도 하나 더 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우습게도 혼자 쓸쓸하게 집으로 들어갈 외로운 친구를 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내가 어릴 땐 아파트에 살아도 현관문을 다 열어놓고 지혜야 – 혁진아 – 정현아 –라고 이름을 부르던 때였다. 집에 엄마가 있다는 건 누군가 반겨줄 안락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굳건히 닫힌 현관문을 열고 홀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고독한 독립을 의미했다. 그땐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나와 동생들에게는 엄마가 하교하는 우리를 위해 늘 다양한 간식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자부심이었다. 그래서 생일잔치도 집에서, 고민상담도 집에서 뭐든 집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다.

“ 엄마~~”라는 두 글자로 세상을 다 움직일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 엄마의 존재는 꽤나 대단하고 묵직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엄마는 고구마 맛탕을 만들기보다 글을 쓰고 싶었을 거다. 저녁 찬을 만들 시간에 예전 일하던 회사로 달려가 일을 하고 끝나면 소소하게 회식을 하고 집단에 귀속된 삶을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어린 자식들이 번갈아가며 엄마의 다리를 잡아당기는 통에 깊어지려던 생각이 흩어졌는지도 모른다. 다행이다.

“ 아휴 말 마라. 엄마가 너희 키울 때 생각하면...”

엄마는 집에 돌아오는 길, 반은 웃으며 또 반은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한 여자의 애잔한 30대 40대를 헤집고 다니며 유영했다. 어울리지 않는 고요한 유영이었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고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감 때문에 씩씩하는 숨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창밖으로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부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 결혼이 미친 짓이냐. 임신이 미친 짓이냐.’

“ 아 됐어. 지나간 일 잊어 그냥.”

“ 아 경자고모 졸라 짜증 나.”

동생들은 당장이라도 자동차 뒷 자석 문을 부숴버리고 도로로 뛰어들 것만 같이 상기돼 있었다.

‘ 가장 무서운 건 흥분보다 고요라는 것을 모르는구나.. 애송이들..’

엄마의 고요한 말투와 표정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내 눈에는 엄마의 마음이 지금 역대급 토네이노로 인해 다 무너져 버린 것처럼 보였다. 엄마를 통해 나를 보게 된다. 나를 그리게 된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무언의 투쟁 속에 숨긴 진심을 자꾸 들춰보게 된다. 사실 나도 두려운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은 나의 기질이.

서른 살 전에 결혼을 해야 애 낳을 때 편하다고 아빠는 나에게 말했다. 아직 26살 딸에게 갑자기 뜬금없이 웬 출산 얘기냐고 화를 내면 애 안 낳고 늙을 거냐고 아빠는 반문했다.

그럼 나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다시 대들었고 아빠는 30살 전에는 무조건 결혼해서 건강할 때 임신을 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그 현명의 기준점은 도대체 누가 정하는 것이냐고 한 마디 더 하려고 할 때 엄마는 아빠 등짝을 살짝 때리며 조선시대 같은 말 하고 앉아있다며 내 편을 들어주곤 했고 나는 그런 대화가 오가는 딸 셋의 집안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그런 아빠의 말에 반기를 들면서도 또 좋은 사람을 만나면 빨리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는 거였다. 완전한 모순이었다.

기벽이를 만난 건 26살 겨울, 우리는 27살 결혼을 했다.

괜찮은 사람이고, 꽤 괜찮은 우리들의 조합이니 빨리 결혼하는 게 어떨까?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세뇌와 나의 의지대로 27살에 유부녀 대열에 합류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성향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고, 젊고 부주의해 신혼시절을 실컷 누리지도 못한 채 부모가 됐다. 내 나이 28살, 남편 나이 29살에 우리는 서아 아빠 서아 엄마라는 두 번째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더 함께 있고 싶어서 결혼하는 것일까 아니면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결혼을 하는 걸까.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아이를 낳고 이런 자잘한 고민들은 정신없는 모유수유로 말끔히 지워져 버렸다.

엄마의 정신을 살리는 건 어쩌면 아이들이겠구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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