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과 절, 그 사이에서

성당에 다닐까, 절에 다닐까

by 지오쌤

나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삶의 깊은 순간마다 불교의 세계도 함께 내 곁에 있었다.
성당과 절 서로 다른 두 공간에서 나는 신앙과 사람 그리고 나 자신을 다시 배우고 있다.

성당이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선택의 여지없이 성당 재단의 중학교에 다녔다.
20대가 되어 스스로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남편과는 관면혼배를 했다.
아이들도 모두 견진성사를 받았다. 오랫동안 우리 가족은 성당 안에서 믿음과 삶을 함께 키워왔다.

이미지 출처: pixabay.com

결혼과 동시에 내 삶엔 또 하나의 신앙 공간이 들어섰다.
시댁은 대대로 불교 집안이었고 아버님의 기일이 사월 초파일이어서 매년 자연스럽게 절로 향했다.
종교적 관용이나 포용 때문은 아니었다.

가족 간 충돌이나 정서적 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한 현실적인 판단이 더 컸다.

절 방문은 점차 일상이 되었다. 특히 막내 시누 부부와 가까워지며 절과 더 가까워졌다.

그녀는 남편과 대학을 함께 다녔고 나와는 나이가 같았다.

물론 시누올케 사이가 처음부터 편하진 않았다.
때론 감정이 왜곡되어 도마 위에 오른 ‘나’를 스스로 더 난도질하던 시간도 있었다.
다섯 명의 시누이 손윗동서 그리고 홀어머니까지… 시댁과 완전히 단절하고 싶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도마 위의 철부지 새댁도 시간 속에서 성장했다.
동갑내기 시누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우리를 바꿔놓았다.

시누 부부는 불자였고 나는 천주교 신자였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나는 절을 편안히 드나들었다.

대웅전에 절을 올리고 절밥을 나누고 차를 마셨다.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담소를 나누는 시간도 더는 낯설지 않았다.
종교는 달랐지만 생각의 폭은 함께 넓어져 갔다.


그들은 우리가 가장 힘들던 시절 소리 없이 우리를 도왔다.
값비싼 약재, 나물, 고로쇠수, 알칼리수, 제철 재료를 틈틈이 보내왔다.

휴가는 늘 남편의 컨디션과 일정을 배려해 함께 했다.

연휴에도 남편이 쉴 수 있도록 마음을 쏟았다.
남편이 먹고 싶어 하던 음식을 가마솥으로 만들어 챙겼고 공기 좋은 산속 휴양림을 예약해 쉼을 나눴다.
임종이 가까워지던 날 그녀의 남편은 한 시간 넘게 남편의 몸을 안마하며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남편은 아마도 마지막 순간 그 따뜻한 손길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들의 위로는 종교도 인연도 뛰어넘는 사람이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깊은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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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냉담 중이다.
언젠가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 어쩌면 시누가 다니는 절에 마음을 두게 될지도 모른다.
요즘은 유튜브로 황창연 신부님의 유쾌한 강론과 법륜 스님의 차분한 즉문즉설을 번갈아 듣는다.

내 마음은 어느새 두 공간을 모두 품고 있다.

신앙은 꼭 하나만을 고집해야 하는 걸까?
내가 믿는 종교가 최고라는 믿음이 진짜 믿음일까?

성당과 절 사이 그 다리 위에 서서 나는 그런 생각들을 곱씹는다.


그 다리는 시누와 나 사이에 놓인 우정의 다리이자 삶과 믿음을 잇는 다리다.

다름을 이해하고 경계를 넘으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그 다리 위에 서있다.

그 위에서 나는 나의 신앙과 관계, 그리고 삶을 새로이 배운다.

내 믿음은 더이상, 하나의 신앙만이 진리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마주 한다.

그들은 따뜻했다.

슬플 땐 깊이 슬퍼하고 기쁨엔 아낌없이 웃어주었다.
긴 시간 ‘내 종교만이 참’이라는 믿음 안에 머물렀던 내가 이제는 나와 다른 삶을 만난다.

그 만남이 바로 내가 믿는 삶이고 내가 살아내고 싶은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