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와의 만남

아버지 학교를 다녀줘

by 지오쌤


사업은 이미 기울어지고 있었다.

결제해야 할 물건값, 카드값, 사무실 임대료, 관리비,

직원들 급여와 4대 보험료까지…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 앞에서 허우적대던 시절이었다.

그때 인서가 말했다.

“엄마, 아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녀의 표정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사업을 망쳐놓고도, 그 당사자가 결혼을 이야기하다니—

경이는 기가 막히고 입이 막혔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마음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밀려왔다.


실패한 사업으로 노후를 위해 마련한 오피스텔을 팔았고, 퇴직 후 도시를 떠나 조용히 살겠다며 마련한 손바닥만한 땅도 처분했다.

엄마의 노후는 점점 불안해졌고,

비상금은 이미 바닥이었다.


그런데 딸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결혼을 말하고 있었다.

경이 속에서는 욕이 차올랐고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무거운 실망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지금 이 상황을 모르진 않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무심할 수 있지?’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을 눌러 담으며

경이는 겨우 침묵을 지키고 딸의 말을 들었다.


인서가 말했다.

해령에서 컴퓨터공학 석사를 마친 외동아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자신은 “장남 아니면 외동아들과만 결혼할 생각”이었다고.

그 말에 경이는 순간 멍해졌다.

자신의 삶과는 너무도 다른 계산과 선택 앞에서

딸이 낯설게 느껴졌다.

딸이 나간 뒤, 남편이 말했다.

“큰딸이 나한테 큰 선물을 했어.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속이 다 시원하네.”

그 말이 낯설었다.

그토록 아끼던 딸이 떠난다는데, 속이 시원하다니.

딸을 품에 안고 울지는 못할망정,

이별 앞에서 안도하다니.

경이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업 실패 이후, 모녀는 얼굴만 마주쳐도 으르렁거렸다.

카드값을 갚느라 지칠 대로 지쳤고,

말보다 눈총과 한숨이 먼저 나왔다.

그 와중에 딸은 남자친구를 데려왔다.

경이는 찬성도 반대도 아닌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봤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괜찮아. 잘한 선택이야. 보내줘야지.

나도 짐을 좀 덜지.”


그 말에, 경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아니라, 포기의 몸짓이었다.

정갈한 한정식집에서 사위감을 만났다.

가야금 소리가 은은히 흐르고, 창밖 정원은 단정했다.

기이하게도 그 평온한 풍경이 오히려 마음을 더 불안하게 했다.

인륜지대사라지만, 딸의 결혼보다

석훈의 건강 상태는 경이가 짊어진 가장 큰 무게였다.

‘이 남자는…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 수 있을까.’

인서와 비슷한 키의 청년이 검정색 수트를 입고 배꼽 인사를 했다.

사위는 정중했고, 진지했으며, 약간은 쑥스러워했다.

“요즘은 다들 결혼이 늦어지는 추세인데, 왜 이렇게 일찍 결혼하려고 하나요?”

경이가 물었다.

“형제 없이, 타지에서 혼자 살다 보니 너무 외로웠습니다.”

그리고 둘이라면 가난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결혼이 꼭 사랑이나 낭만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을,

경이는 그날 처음으로 실감했다.

문득 30여 년 전이 겹쳐 보였다.

남편도 그런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했을까.

그 또한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딸이 결혼하겠다고 말했을 때,

경이 마음은 기막히고 착잡했다.


하지만 사위감을 마주한 날,

남편은 누구보다 따뜻하게 입을 열었다.

“격하게 환영하네!”


그리고 곧바로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단, 내 딸을 데려가려면 조건이 있어. ‘아버지 학교’를 다녀줘.”

사위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네, 꼭 다니겠습니다.”

그건 어쩌면 남편이 스스로에게 하지 못한 말이기도 했다는 것을 경이는 깨달았다.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었어.

사랑했지만, 표현도 잘 못했고, 보호해주지 못했어”

평생동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고백.

하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만큼은

남편이 사위에게 ‘남편의 자격’으로 말을 건넨 것처럼 보였다.

말로는 끝내 표현하지 못했던 후회와 회한.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는 의지와 행동으로 전하고 싶었던 마음.

그것이 그의 마지막 사랑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위감을 집으로 초대했다.

예비 사위는 럭셔리한 한우 선물 세트를 들고 왔다.

“새벽에 마장동 다녀왔습니다.”

지방 출신 청년이 마장동 우시장을 다녀왔다는 말에

남편은 웃음을 터뜨렸다.

“촌놈인 줄 알았는데, 벌써 마장동까지 다녀왔다고?

마음 단단히 먹었구먼.”

두 사람은 금세 전공 이야기를 나눴다.

IT 업계에서 일했던 남편과,

IT를 전공한 사위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었다.

남편이 환우가 아니었더라면,

이 둘은 술 한 잔 기울이며 더 오래 이야기 나눴을지도 모른다.

아쉽지만, 그저 따뜻한 눈빛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날의 정원,

그날의 식사,

그날의 대화.

경이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다만, 그 모든 장면을 덮고 있는 기류가 있었다.

이 사람은 오래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더 조심했고,

그래서 더 애틋했다. 마음이 자꾸 흔들렸다.

그 후로 남편은 사위를 자주 불렀다.

종종 식사에 초대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버지로서 남겨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남편은 남은 시간만큼은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입니다.

일부사건과 인물은 픽션이 가미되어 있으며 실존인물이나 단체와는 무관합니다.

수, 일 연재